원두막의 낭만
마을에는 원두막이 두 개 있다. 한 채는 집들이 있는 곳, 즉 사람들의 동선이 겹치는 곳에 있고 다른 한 채는 산 아래로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그 상반되는 위치가 제작자의 의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낸다. 하나는 이웃들끼리 잠시라도 모여 앉으라고, 하나는 경치를 느긋이 앉아서 즐기라고.
그러나 이 오래된 원두막 두 채의 실제 주인은 거미들이었다. 우리는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부지런함의 대명사를 개미에게 부여했지만, 산에 와서 살아 보니 거미만큼 부지런한 것들이 없었다. 물건을 바깥에 놔두고 잠시만 잊고 있으면 거미는 거기에다가 집을 완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해 좋은 날 빨래 잘 마르라고 마당에 널어놓고 저녁에 거두러 나가면 빨래 건조대 살과 살 사이에 얇은 거미줄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였다.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마을 어귀가 멀어서 내일 버려야겠다고 상자를 문밖에 내놓고 자면, 영락없이 거미집으로 둔갑해 있다. 그래서 매번 빨래를 널 때마다 거미줄부터 떼어놓는 작업을 해야 했고, 거미를 집 가까이 부르기 싫으면 어둡더라도 마을 입구까지 내려가 재활용을 버려야 했다.
내 책상은 창문에 붙어 있고, 보통 빨래 건조대 같은 건 바로 창문 바깥에 세워두는데, (이런 배치를 해두어야 책상에서 일하다가 빨래가 바람에 날아가는 걸 얼른 보고 뛰어나가 잡을 수 있다)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있노라면 건조대 사이사이 갓 지은 집에서 대롱대롱 매달려 늘어지게 자고 있는 거미가 보인다. 곤충류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야, 거미 너 같이 부지런해도 수고한 대가로 잠들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찾아든다.
그런 거미들을 찾아 일찍 일어난 새들이 빨래 건조대로 날아들기도 한다. 바로 눈앞에서, 그것도 인공 세재 잔뜩 묻힌 빨래가 널려있는 건조대에 야생의 새가 찾아와 앉았다 가준다는 것이 볼 때마다 신기하다. 그리고 거기서 배도 채우고 노래도 하다 간다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에수피, 에수피, 같은 소리를 내긴 하는데, 무슨 새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한 번은 동네분들에게 물어보려고 울음소리를 흉내 내봤지만, 웃음거리만 됐다.
하여간 원두막 두 채는 서로 시간을 나누고 자연을 바라보라는 원래 만든 사람의 의도와 달리 거미들 분양 사무소가 되었고, 그러니 주민들 보기에는 흉물에 가까운 상태였다.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게 마을 사람들의 오랜 과제였다. 단장하든지 허물어버리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부수자니 일이 커지고, 단장을 하려니, 시간이 지나면 또 거미들 집이 될 것이 뻔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미 아무도 앉지 않는 원두막, 닦아 둔다고 해서 누구 엉덩이 하나 정답게 붙잡을 수 있을까.
답은 엄마들이 냈다. 동선이 겹칠 때마다 어색하지 않게 그곳에 앉아, 원 제작자의 의도대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부류가 딱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새롭게 닦고 정리한다고 해서 이제와 마을 어른들이 둘러앉아 정을 나눌 가능성은 낮지만, 아이들이라면 괜찮지 않겠냐고, 아이들이 있어 원두막의 새로운 쓸모를 꿈꿀 수 있지 않냐고 엄마들이 지적했다.
그래서 엄마들 몇 명은 걸레를 들고 나와 집 앞에 있는 원두막을 다 닦고, 거기에다가 장난감을 가져다 놨다. 각 집에서 아이들이 따로 가지고 놀던 것들이 죄다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도 덩달아 밖으로 나왔다. 마을 아이들 발자국이란 발자국은 이른 아침부터 그곳 방향으로 진하게 파이기 시작했다. 아, 저런 수가 있었다니, 무릎을 친 아빠들은 혹여 아이들이 놀다가 떨어질까 봐 원두막에 그물망을 둘렀다. 우리 마을의 첫 ‘키즈카페’가 그렇게 완성됐다.
이제 언덕 위의 원두막만 처리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이들의 활동을 기대하기가 애매했다. 가파른 언덕 경사 바로 위에 있는 것이라, 어른들이라도 잘못 구르면 크게 다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사실 난 동네 아이들에게 거기 절대 올라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둔 터였고, 아마 다른 집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그런 그곳을 새로 닦고 전망대로 꾸민다고 해서 누가 굳이 언덕 위까지 올라갈까.
그래서 그 원두막은 철거됐다. 원두막 둘레를 감고 있는 전선들을 다 찾아내 전기를 끊고, 평상 위에 깔아 둔 장판을 뜯어냈다. 장판을 걷어내니, 개미들이 우글댔다. 거미 말고도 주인이 있었나 보다. 한 아빠가 작업 중지를 요청하고, 유리병을 어디서 들고 와 흙과 개미를 담았다. 그리고 아빠들의 철거 작업을 지켜보던 아이들에게 줬다. “아빠들 어릴 땐 방학 때마다 탐구생활을 했거든? 근데 이런 개미 생활 관찰기 같은 게 숙제로 자주 나왔어...”
다음, 장판이 없어지고 개미도 떠나 알몸이 노출된 평상을 톱으로 잘랐다. 이제 원두막은 바닥 없이 기둥만 네 개 박힌 건물이 되었다. 기둥도 차례차례 베어냈다. 밑동은 시멘트로 박혀 있어 뽑을 수가 없었다. 최대한 낮게 톱질을 하고 흙으로 덮어 마무리했다. 나무가 많이 나왔다. 평상과 원두막 기둥을 하던 것들이라 곧고 굵었고, 버리자니 아까웠다. 이걸 어디다 써야 할까,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그러다가 한 아빠의 눈에 오두막 옆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들이 곧고 실했다. 적당한 거 하나 골라 줄을 달고 그 아까운 나무판 몇 개를 묶었다. 뚝딱뚝딱 그네가 완성됐다. 아빠들이 먼저 시승을 해보았다. 시승인데 한참을 내려올 줄 몰랐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빠들 몸무게 정도, 가지는 끄떡없이 버텼다.
그네를 만들고 나니 그 아까운 나무들이 새로운 쓸모를 찾았다. 원두막 바로 밑 가파른 언덕 경사에 계단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이 이 그네를 타려면 빙 돌아오거나 그 경사를 기어 올라와야 하는데, 사실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지름길을 택하기 마련이다. 안전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그런 것 아니겠나.
아빠들은 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맞춰 잘랐다. 언덕 흙을 계단 모양으로 파면서 나무를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긴 나사를 찾아 박았다. 틈 사이사이 흙으로 메우고 단단해지라고 물을 부었다. 계단마다 사방에 철심을 박아 나무판들이 미끄러져 나오지 않도록 했다. 역시 아빠들이 시승을 먼저 했다. 차례로 새 계단을 오르내리며 나무들 속속 파고들어 간 흙들이 여물게 자리 잡도록 꽉꽉 밟았다. 아빠들은 거미 같았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아직 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남은 잔가지와 나무들을 거둬 드럼통에 넣고 불을 때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드럼통 위에 구운 돼지고기는 거미의 늦잠보다, 그 거미를 먹은 이름 모를 새의 노래보다 향기로웠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아이들은 어설픈 계단을 너도 나도 올라 그네를 타보고 내려왔다. 그네가 흔들리는 것에 따라 큰 나무의 나뭇잎들이 바람소리를 그럴듯하게 흉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