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차일드와 스케이프고트의 만남
어제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다. 아주 속편한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어긋났을까. 삶도 생활 패턴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도, 서로에 대한 원망도.
비록 집에서 차지했던 포지션은 다르지만 골든차일드였던 "동생"과 스케이프고트였던 "나"는 마음 속 느끼는 황폐함이 서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아버지의 (작지만 내실있게 운영되어온) 사업을 물려받을 후계자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십여년을 아버지 밑에서 지냈다. 나는 애초에 내 힘으로 독립해야 하는 환경이었기에 다른 데 눈 돌릴 수 없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 결혼, 육아, 재취업 등의 코스를 밟았다.
내가 결혼한 게 2009년 이었고 두 아이를 데리고 여러번의 이사와 오랜 전세살이 생활 뒤 지칠만큼 지친 우리는 결혼 8년 차인 2016년 "빚내서 집사라"는 국가의 정책과 잘 맞물려 아주 무리해서 내집마련을 했다. 분당의 구축아파트였다. 그맘때부터 부동산이 상승곡선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 그냥 타이밍이 시의 적절해서 부모 도움 없이 독립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의 새옹지마 덕분에 부동산 상승 사이클을 탔다.
동생의 경우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강남의 48평 아파트에 혼자 들어가 살았다. 그러다 내가 집을 마련할 때쯤 부모님은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았다. 110볼트를 쓰는 강남 구축에 대한 동생의 컴플레인도 한몫했다. 강남 아파트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내가 소유한 분당 아파트 시세의 반값 정도일 때 팔았다. 그리고 동생은 신축 아파트 전세로 들어갔다. 이후 코로나가 시작되며 부모님의 사업이 기울었다. 아버지와 갈등을 빚은 동생은 회사를 나와 뒤늦게 독립했다.
동생은 분명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동생은 부모님에게 트레이드 마크였다. 사업 후계자로서 멋스러운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녔다. 옷은 언젠가 닳아 사라진다. 차도 연식이 오래되면 가치가 떨어진다. 사업도 망하면 그만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동생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동생은 말한다.
"이제 차별받은 얘긴 그만해. 누나가 이겼으니까."
꼭 '그렇게 억울해하더니 속 시원하냐?' 같이 들려서 속이 찔렸다. 그때 알았다. 골든 차일드는 골든 차일드대로 스케이프고트는 스케이프고트대로 누구 하나 편한 자가 없다.
아무 것도 받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땅굴을 판다. 생존한다는 게 뭔지 감각으로 안다. 돈을 아낀다. 차 사는 것을 미루고, 소고기 사먹는 것을 줄이고, 과일도 떨이로 구매할지언정 무엇이 나를 가치있게 하는지 감각한다. 이를테면 물질적으로 차별받아왔다고 해서 내가 동생보다 가치가 없는 인간이 되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지금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경험으로 안 것이다.
왜 나르시시스트였던 아버지가 두 자녀를 차별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아픈 손가락"을 더 챙겨준 것이라고 한다.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충만했던 동생이 의존성이 생기면서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동생과 맥주를 마시면서 어린 시절 얘기를 나눴다. 우리 둘 다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한편으론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다. 하지만 여러 기억들은 어긋났다. 동생이 한 말 중 이 말이 가슴에 꽂혔다.
"누나는 모르겠지만 누나는 아버지를 닮았어. 그렇다고 누나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건 아냐."
동생은 나에게서 아버지의 성향을 본다고 한다.
"괴물을 상대하다 내가 괴물이 된 거라는 말이니?"
"아니. 그냥 아버지 딸이니까. 닮은 거야."
우리집에서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맞짱떴던 게 나다. 가정폭력이라고 명명하고 반항하고 반박하고 대꾸하던 게 나다. 폭력이 행해질 때마다 어머니에게 왜 저런 사람과 사냐고 당장 이혼하라고 했던 게 나다. 어쩌면 내가 아버지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솔직히 나 스스로도 때때로 아버지를 닮아있는 나를 본다. 그럴 땐 소스라치게 놀라며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반추한다.
어긋나는 기억들 속에 동생에게 사과하고 나도 사과를 받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들로 씁쓸했다.
골든 차일드의 금빛 미래 스케이프고트의 희생된 미래...
꼭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