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생존기
살면서 나르시시스트를 만날 확률은 생각보다 높다.
물론 이것이 스펙트럼 형태이기 때문에 정확히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 힘들 순 있다.
일반적으로 전 세계 4-6% 우리나라의 경우는 30%라는 연구도 있으니
세계적으로도 학습에 대한 성취압력이 큰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자존감의 심각한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크기에 우리나라에 나르시시스트가 더 많다는 이론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라도
가족들 중 혹은 직장 내 인연 중 꼭 한번쯤은 나르시시스트를 만나보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고통받았을 것이고 문제는 그것을 인지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의 차이에서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되었던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우연한 여러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 사람의 옆에 앉게 되었는데
내내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에 심취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타인을 은근슬쩍 얕보는 태도가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을 만난 뒤로 매우 기가 빨리는 기분이 들어 집에 돌아와 한참을 잤다. 그리고 이런저런 인터넷 서핑 중에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을 알게됐다.
이후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강연과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내 아버지에 대해서. 너무나 전형성을 띤 나르시시스트였다.
그제서야 인생의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사실 유년기에 아버지와의 관계로 인해 너무나 고통받았기 때문에 사람 관계에서 나도 모르게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무의식에 의해 타인에 대해 벽을 치는 습관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지속적으로 나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너는 기준미달이야!"라는 메시지를 심어준다는 데 있었다.
어릴 때 친구의 괴롭힘 때문에 울면서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짧고 통통한 다리를 보고 "무다리"라고 놀리는 한 짓궂은 친구 때문에 펑펑 울고 있을 때, 아버지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서 자초지종을 듣더니, "그러게 다이어트 좀 해라." 라는 잔소리를 끝으로 마무리 지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황당하지만
그땐 정말 나의 문제로 치부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녀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실 못한다고 하는 것은 다소 너그러운 판단일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인간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팩트만 존재한다. 다리가 두껍냐 아니냐 살이 쪘냐 안쪘냐. 살이 쪄서 "넌 뚱뚱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뚱뚱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타인에게 그런 말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타인을 보고 "오 끔찍하게 뚱뚱하군"이라고 생각할 지언정 "당신은 뚱뚱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지 "학습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보다 사회생활을 잘한다. 공감에서 비롯된 능력이 아니라 학습에서 비롯된 능력이지만.
그들은 무언가를 굳이 숨길 필요 없는 가족들에게는 본래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그 뚱뚱한 사람이 내 자식이라면 더더욱.
사람들을 만날 때 간혹 내가 유달리 작아지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직접적으로 "당신은 기준 미달이에요"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어필한다든지, 나의 좋은 점을 단점으로 은근슬쩍 바꾸어 말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나를 가스라이팅 한다.
만일 내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든든하게 버텨내겠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면 영락없이 덫에 걸린다.
그리고 나의 단점 때문에 그 사람에게 의존해야할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물론 이 덫이 남녀간의 관계에 놓였을 때가 최악이리라.
어쨌든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그나마
성인이 되어 독립한 뒤 극도로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경계했다는 점은 너무나 다행이다.
그것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으로 수렴되지는 않았지만 경계 대상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는 명확했다.
오랫동안 나르시시스트로부터 학대받는 삶을 살았지만 내가 얻게된 건 나르시시스트를 알아보는 안경이다.
허비된 10년이 있었지만 얻게될 10년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나르시시스트 안경을 조금 공유해보고자 한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