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스케이프고트 일기

by 앙뺑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부모 중 한 명이 나르시시스트이거나 둘 다 나르시시스트인 경우 자녀는 보통 스케이프고트와 골든 차일드로 나뉜다고. 스케이프고트는 희생양이라는 뜻으로 보통 제단에 올려져 목이 그어지는 양을 뜻한다. 골든 차일드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자녀다. 부모의 정신적 물질적 사랑은 유독 골든 차일드에게 향하는데 그렇다고해서 골든 차일드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동생의 경우 아주 오랫동안 부모님의 지원 아래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지만 그렇다고 그 애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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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올려진 스케이프고트, 출처: AI이미지>


최근 한 연예인이 형과 금전적인 이유로 불화를 겪는 과정에서 나타난 그 가정의 형태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너무나 완벽한 스케이프고트와 골든차일드의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아도 동생이 형으로부터 착취당한 '현상' 앞에서 부모들은 '형'을 지지했다. 그들에게 어떤 객관적 논리는 통하지 않는 듯했다. 나 또한 스케이프고트로 자라난 한 사람으로써 보통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황이 너무나 이해가 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나르시시스트는 타인을 볼 때 거기 자신을 투사한다. 물빛에 비치는 불빛처럼 , 출처: 개인 소장 사진>

생각해보면 우리집의 골든 차일드가 나였던 시절도 있었다. 내가 첫째이기도 했고 공부에서 앞섰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서 그 위치는 영원히 뒤바뀌게 된다. 내가 아버지의 '이상함'을 눈치챘고, 우리집의 매커니즘이 '사이비'와 유사하다는 것을 직관하면서부터다. 나의 반항이 시작되었고 아버지가 진심으로 싫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골든차일드에서 스케이프고트 좌천시켜야만 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나르시시즘을 연구한 정신과 전문의에 의하면 스케이프고트는 비교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갖는 포지션이라고 한다. 상황을 다소 클린하게 보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의 비정상성을 감지하고 그것을 소리내어 말하기 때문에 좌천되는 포지션이라는 것이다. 매우 공감한다. 물론 그때는 그런 상황을 계속 감지하는 내가 '비정상'이고 '예민함'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금기의 영역으로 침투하기 위해 방문을 허락 없이 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아버지를 '가정폭력범'이라고 명명하였으니 지금 되돌아보면 매우 아찔하다. 어떻게 대책없이 그렇게 했을까 싶으면서도 다시 되돌아가도 그때의 나는 그때의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하다.


내가 이런 식의 반항을 할 때면 아버지는 "당연히" 나에게 매를 들었으며 소위 "줘 패기"도 했다.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머리채를 잡아 뜯은 적도 있다. 여러 종류의 체벌을 겪으면 겪을수록 무슨 일제시대 독립군처럼 더 꼿꼿해졌던 것은 내 평생의 성격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외곬수적인 성향으로 상당부분 왜곡되기도 했지만.


사실 아버지에게 반항하면서도 한번도 눈물을 쏟거나 유약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지만 반항의 일상은 너무 큰 공포였고 스트레스였다.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여러번 했던 것 같다. 이후 몸에 한가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물리적으로 큰 형상 앞에 가면 겪는 이상증세였다. 절에 있는 커다란 불상이나 놀이동산같은 곳에 가면 인형 탈을 쓰고 있는 사람 옆에 가면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변하면서 주변이 몽환적으로 느껴지고 감각이 마비되는 것처럼 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 그런 현상이었고 이러한 현상을 아주 오랫동안 앓았다. 그것이 일종의 공황 증세였음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달았다. 아버지와의 절연 뒤에 그 증상이 저절로 사라졌으니 원인 또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말로는 하지 못하는 그 두려움들이 가슴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듯하다. 인간이란 참으로 신기한 존재다. 내면에 얼마나 깊은 심연의 바다가 있는지. 내가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란 결국 병을 키운다.


한평생 아버지는 내가 결코 정복하지 못하는 절대자였고,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으며 그가 하는 실수조차 다 이유가 있는 명분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한번도 아버지가 누군가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가 주식으로 수억원을 날린 적이 있는데, 그러한 커다란 과오 앞에서도 단 한번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 앞에서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 집이 더 단단해지는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으니.


앞서 말한 영화 <디 아더 램>에서 절대자 셰퍼드가 경찰들 앞에서 비굴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며 그것을 지켜본 한 소녀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 내가 공감했던 것은, 내가 성인이 되고 나만의 세계가 꽤나 굳건히 형성되었을 때 서서히 깨달아갔던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누구보다 나약한 사람이며 자존감이 너무나 낮은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어린 사춘기 딸의 예상치 못한 '반항' 앞에 그는 꽤나 놀랐을 것이가 꽤나 두려웠을 것이다. 확실하게 짓밟고 길들이려 할수록 (사실 나는 매번 "생존을 위해" 아버지에게 사과하며 적당히 타협을 했다) 진짜 내면을 숨긴 채 예비 반항군 혹은 예비 혁명군으로 자리잡는 것 같으니 아마도 나를 보는 아버지도 내내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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