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그것이 사이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을 때

by 앙뺑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가 왔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사춘기가 오면 자아가 커진다. 없던 자아도 만들어진다.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에서 차지하는 나의 위치에 대해 내가 누려야 하는 존엄에 대해 생각한다. 그래서 당연히 나의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여전히 싸웠고 방에 들어가 2차전을 벌였고 때로는 그렇게 밤을 샜다. 아침에 퀭한 눈빛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척을 하며 그 여파를 나와 동생에게 화풀이로 쏟아내기도 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불행했다. 우울증 환자였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린 마음에 참으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또다시 싸움에 불이 붙은 어느 날 저녁이었다. 이상하게 그날은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결국 단행을 했다. 그 금기의 영역으로 한 발 딛었다.


"그만 좀 하시죠?"


나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얼마나 파격적인 행동이었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아직도 그때 아버지의 눈빛이 기억난다. 어안이 벙벙해진 눈빛. 어머니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건방진 새끼.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사실은 굉장히 무서웠다. 그 눈빛, 살기어린 눈빛, 내 목숨줄을 쥐고 흔들며 나를 곧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 눈빛은 사실상 나를 압도했다.

<디 아더 램>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사이비 종교의 메커니즘에 대해 다룬 영화였는데 어떤 공동체 안에 셰퍼드라는 절대자가 있다. 여자들은 그 공동체의 유일한 남성이자 절대적 힘을 가진 셰퍼드가 결정하는대로 모든 것을 따른다. 당연히 그 안의 법은 셰퍼드의 개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도구이고 어떤 거창한 말로 포장되어 법을 정당화한다. 여자들은 그 법이 자신들을 고통스럽게 할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따른다.

<사이비 공동체의 모습_출처:AI이미지>


그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법은 당연한 것이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따르는 고통은 관습과 예절이 되어 그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일상을 선사한다. 그들이 맞닥뜨리는 세상 속에서 그들은 다른 기준의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PTSD가 몰려왔던 건, 아마 내가 소속되었던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도 이 사이비 종교의 메커니즘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집에 어른이 두 명 있었지만 아버지라는 신(셰퍼드)과 맞설 수 있는 다른 어른인 어머니는 힘이 현저히 약했다. 아마 결혼한 직후에는 그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나름대로 좋은 대학을 졸업한 어머니는 겉으로는 강인해보이지만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는 취약성을 가진 여성이었다. 또 여성은 남성의 그늘 아래 살아야한다는 조선시대 가부장적인 통념에 지배당한 여성이기도 했다. 이 모든 요소들 때문에 아마 아버지의 지배가 서서히 더 힘을 발휘해왔던 것 같다. 어머니가 아주 불행하다고 느끼는 짬짬마다 딸인 나에게 아버지가 행했던 폭력의 역사를 고백했던 일들이 있는데(나중에 물어보면 스스로 이것을 기억 못한다고 한다.) 대학 시절 아버지를 만나 4년 간 연애하던 중, 결혼을 앞두고 있던 4년 차에 첫 폭력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등산을 하던 중 갑작스런 기분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한 것이다. 이후 신혼생활 중에도 때때로 심지어는 친구들 앞에서도 손찌검이 있었다고 한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안주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다고 상을 뒤집어 엎는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친구들도 낄낄대며 웃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힘은 점점 약해졌고 당연히 자녀를 지키지 못했다. 그날도 그랬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대드는 딸이, 자기 편을 들어줘 고맙다기보단, 일을 크게 만들고 버릇없이 어른 일에 끼어드는 건방진 새끼이기는 어머니에게도 매한가지였다.


단언컨데 만일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소통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이제는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만 하시라구요. 이건 가정 폭력입니다."


나의 이 말이 거의 자폭 테러였다는 것을 이제 와서야 안다. 아직 미성년자로 살아야 하는 5년의 시간이 있는데,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자처한 것이다. 아버지가 나르시시스트이며 공감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결코 이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따랐던 그 보복의 시간이 어떤 고통인지 알았다면 굳이 그 불구덩이로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에 어머니를 구출하고자 하는 명분과 그 명분에서 피어난 용기가 주축이 된 행동이었지만 정작 어머니조차 그 용기에 대한 고마움은 커녕 나를 종교와 신앙의 파괴자로 몰아갈 것을 알았다면...


이때부터 (한마디로) 나는 좌천됐다. 집안에서의 나의 포지션은 명확했다. 나르시시스트 이론에서 형태의 분류를 나누자면 나는스케이프고트(희생양)였다.(나르시시스트 가정의 자녀는 골든차일드와 스케이프 고트로 나뉜다.)


왜냐하면 내가 무언가가 잘못됐음을 눈치챘음을 그(아버지)가 눈치챘기 때문이다. 절대 강자인 신(셰퍼드)가 실은 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정폭력"이라는 말로 서사화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나를 그냥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희생양으로 거듭나고 있었는데 그 시절을 냉정하게 분석해보자면, 사실상 아버지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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