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나르시시스트일까?

나르시시스트는 절대로 자신을 모른다.

by 앙뺑

영화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윌리스는 귀신을 보는 아이들의 정신병리학적인 연구를 행하며 결국 귀신의 존재를 인지하지만 정작 자신이 귀신이라는 점은 끝내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을 통해 스스로가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큰 충격에 휩싸이며 영화가 끝을 맺는다.


나르시시스트의 인생에 영화 식스센스같은 반전은 없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나르시시스트는 모른다. 자신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걸.



어쩌면 나르시시스트에게 맞짱 떴던 나 또한 나르시시스트였던 것은 아닐까?라고 가끔 생각한다.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에게 찾아오는 환자 중, 자신이 나르시시스트임을 걱정해서 그것을 의사를 통해 진단받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과 전문의가 말한다. 그런 사람은 보통 나르시시스트가 아니라고. 왜냐면 스스로 작게라도 인지했기 때문에.


해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 진단을 받아볼 용의가 있는지. 지금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나는 나르시시스트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눈감는 그날까지 속단할 생각은 없다.


아래의 셀프테스트를 통해

나 자신을 진단해보자.

먼저 나 자신이 나르시시스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예"라고 대답한다면 일단 안심이다.)

두번째로 나의 우월성을 타인의 불행을 통해 느껴본 적이 있는가?(이러한 경험은 한번만으로도 매우 위험하다.)

세번째로 타인과 대화를 할 때 그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가 할 말을 생각하는 편인가?

(이러한 경험이 지속되었고 지금도 이렇다면 가능성이 있다.)

네번째로 의견이 다른 타인의 말에 수긍하고 인정한 경험이 없지는 않는가?

(만일 진심으로 타인의 의견에 수긍하고 내 고집을 꺾은 경험이 있다면 다소 안심할 수준이다.)

다섯번째로 지인들에게 나의 약점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인가?

(약점이 진짜 "약점"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약점이 아닌 것을 약점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솔직하게 드러낸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물론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을 이것만으로 설명할 순 없다.

셀프테스트 리스트를 만들자면 A4 용지 한 장으로 부족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급한대로의 간이검사가 필요하다면 위의 다섯개의 질문에 답해보자.


전형적 나르시시스트였던 내 아버지의 경우 가족들의 모임에 초대되어 가족이 준비를 할 때 가족들이 입고 나가는 "옷검사"를 했다. 자녀들의 옷 뿐 아니라 어머니의 옷과 구두까지 자신의 취향에 맞아야 했다.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면 그것이 "품위"와 "품격"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옷으로 가족들이 모두 착장한 뒤에 "오늘 그 집 가족의 기를 팍 죽이고 와야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분명 친한 지인임에도 왜 기를 죽여야하는지 그 당시에는 그저 강한 거부감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나르시시스트들이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그들로 인해 위로받고 친밀감을 쌓는 것이 이유가 아니었다. 그 사람을 만나 내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게 나르시시스트들에게는 허한 마음을 달래고 내일을 맞이하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매일매일 마음이 헛헛하다. 누구나 인생에서 헛헛함을 느낀다. 어느 한 사람이 명품 쇼핑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헛헛하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의 마음의 건강한 부분이 있다면 언젠가 자신이 마음의 헛헛함을 명품으로 달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 회복의 가능성도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헛헛함의 근원을 결코 찾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 인식이 오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을 증명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 헛헛함을 메꾼다. 하지만 그것은 영구적으로 메꿔지지 않는다. 마치 위장에서 소화되는 음식처럼 내일은 또 다른 우월감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평생에 걸쳐 반복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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