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절연할... 용기-prolgue

나르시시스트 부모님으로부터 겪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by 앙뺑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흘러들어가게 된 한 영상이 기억난다. 한 의사가 자신이 어릴 때 열심히 공부했던 비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의사의 집은 매우 가난했었는데 아버지 또한 폭력적이었다. 아버지는 자주 술을 먹고 들어와 행패를 부렸다. 부모님이 서로 다투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어떤 무기를 사용해 어머니를 때리려고 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자신이 공부를 하면 폭력이 멈췄다고 했다. 폭력적인 아버지라 해도 자식이 공부하는 건 방해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공부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영상 마지막에 그 의사는 이제는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말 더이상 싫어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물론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며 겪어온 삶의 무게도 다르다. 뿐만 아니라 느끼는 무게도 다르다. 만일 나였다면 어땠을까. 만일 나였다면... 아 그렇지. 이건 나다.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주 때렸는데 주로 밀치거나 멱살을 잡거나 따귀를 때리는 등-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치명적 상처보단 감정적 폭력 행사였다. 치명적 상처가 없거나 보이지 않으니 주위에서 눈에 띄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칼을 든 일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협박용이었고, 진짜 사용하는대신 칼 뒷꿈치로 싱크대 상판을 찍으면서 끝이 났다. 덕분에 싱크대 상판은 내내 푹 패여 있었다.


패인 싱크대 상판처럼 내 마음은 수선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종종 같은 악몽을 꾼다. 어머니가 죽는 꿈, 칼에 찔리는 꿈, 어딘가에 매장되는 꿈.


청소년기에는 아버지에게 악을 쓰며 대들기도 하고 어머니만 따로 불러내 할 말이 있다며 제발 이혼하면 안되겠냐고 부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가 만일 이혼을 하면 당장 생활하기도 막막하고 니들 시집 장가가는 데 좋지 않을테니 그때까지만 참고 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핑계였다. 성인이 된 뒤 내가 어머니의 손을 억지로 이끌어 유능한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데려갔던 적이 있는데 어머니가 가질 수 있는 재정적 미래가 구체화되었고 그 미래가 썩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 이후 어머니는 나와 대화하기를 거부했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니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 힘이 좀 빠지지 않겠니?' 그때 알았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날 마음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를 내 마음대로 할 순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주장할 수도 없다. 부모가 자식을 맘대로 할 수 없듯 자식도 부모를 자기 맘에 맞게 고칠 수 없다. 보호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없다.


아버지의 폭력을 막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던 의사는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한 듯 보이지만 나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면 그 폭력의 시간들에 대해 여전히 단 한번도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말들은 금기시되거나, 강제 삭제된 기억(언제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반응하는)이 되거나, 혹은 합리화되는('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혹은 정당화되는('그 덕분에 니가 잘됐다.') 방식으로 아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스스로 학대당하기를 선택하고, 또 그게 인생이며 누구나 겪는 작은 일일 뿐이라고 말하는 어머니 또한 자리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내가 누군가를 내 맘에 맞게 바꿀 수는 없다. 그 사람은 내가 아니며 내 소유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절연하는 것에 대한 선택권.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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