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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복지사 박동현 Aug 16. 2021

일하고 싶지 않은 당신을 위한 책

『일하지 않을 권리』데이비드 프레인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떠했는가?     


 아침 6시 55분, 시끄럽게 울리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킨다. 아침은 간단하게 견과류와 요구르트로 해결을 하고 집을 빠져나온다. 집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1시간가량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혀가며 아침을 억지로 소화시킨다. 회사에 도착했다. 오전부터 회의는 뭐 이리 많은지, 이게 정말 필요한 회의인 건지 속으로 생각하며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회의가 끝나고 부랴부랴 밀려있던 일을 처리하다 보면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회사 근처 자주 가는 식당에서 해결한다. 이제 오후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오후 3시, 눈꺼풀이 무겁다.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머릿속엔 '오늘 퇴근하면 뭐 해 먹지?', '이번 주말에는 어디에 놀러 가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오후 5시 30분. 슬슬 '퇴근 준비해야지' 하는데 갑자기 사고가 터졌다. 야근 각이다. 저녁 8시. 다행히 아주 늦지는 않게 일이 끝났다. 집에 도착했는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소파에 누워 배달의 민족 어플을 켠다. 맛집 랭킹에 들어가서 치킨과 맥주를 시킨다.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10시다. 잠시 누워 핸드폰에서 캠핑 용품을 찾아보다 예쁜 노스피크 의자를 찾았다. 살까. 말까. 고민은 배송만 늦힐뿐. 그래, 오늘도 고생했으니 다음 캠핑을 위해 투자하자! 11시 16분, 피곤한 몸을 겨우 일으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던진다.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슬퍼진다. 왜일까. 시간을 보려고 켠 핸드폰 화면에서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목요일쯤 됐는 줄 알았는데 아직 화요일이라니!      


어떤가? 당신의 하루는 위의 하루와 얼마나 다른가?      


데이비드 프레이는 <일하지 않을 권리>에서 현대사회의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유급노동은 노동자의 시간과 기력을 다 잡아먹고 좁은 분야의 기술만 갖도록 강제함으로써 자기 필요를 스스로 채우지 못하게 하거나 과도한 소비욕이 아니고는 채울 수 없게 한다. 235p     


 퇴근 후 힘든 몸을 이끌고 우리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밥 해먹을 힘도 없고 집 안일을 하기도 너무나 힘들다. 그래서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상품들이 개발되었다. 간편하게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밀 키트, 설거지를 대신해주는 식기세척기 등 너무나도 많은 서비스와 상품들이 이전에는 우리가 스스로 하던 일들을 대신해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한다. 아,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하고 말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우리는 거대한 쳇바퀴 속으로 점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거지 같은 기분으로 퇴근해 음식을 사는 거예요. 너무 피곤해서 요리할 기운이 없거든요. 그런데 포장 음식을 사는 데 드는 15파운드를 마련하려면 또 돈을 벌어야 해요. 거대한 도돌이표죠. 236p     


 요즘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혼수 제품을 열심히 알아보면서 너무 놀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수가전이라고 하면 냉장고, TV, 세탁기, 에어컨 정도였었는데 요즘에는 거기에 건조기, 로봇청소기, 공기청정기, 에어 드레서, 식기세척기, 심지어 안마의자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걸 다 사려면 족히 수 천만 원이 필요했다. 결혼을 하면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다고 하는 이유를 알아버렸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더더욱 그만두기 어려워지겠지)     


 세계적 과학자 찰스 디킨스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야기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주인인 줄 알았던 인간은 사실 하인이었고 하인인 줄 알았던 유전자가 사실은 주인이라는 그의 주장은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들 사이에 격렬한 토론의 장을 제공했다.      


여기서 갑자기 찰스 디킨스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의 주장이 진실인가 거짓 인가 와 상관없이 현대의 자본주의가 마치 <이기적 유전자>에서의 유전자와 같이 인간을 숙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질문을 한 가지 해보자. 지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후 생산 역량은 얼마나 발전했을까? 18세기 중엽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이후 21세기 현재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까지 노동 생산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20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인간이 일해야 할 필요로부터 해방시키기는커녕, 대량생산에 기반을 둔 일회성 소비재 유동 및 홍보처럼 전에는 필요치 않던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업무를 창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인간으로 하여금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기술 발전을 시켰는데 이상하게 다른 쪽에서는 필요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무의식적 소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인간이라는 숙주가 필요한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데이비드 프레인은 책에서 일에 대한 비판을 하며 '일하려는 의지, 일하면서 살아가려는 의지로 인해 주체들은 자본주의적 목적에 철저히 복무한다.'라고 말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살아가면 결국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내면성 상실'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 점점 더 세계와 타인에 실용적이며 도구적인 역할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는 어떤 활동이 설령 일자리 유지나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도 그 활동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상실해간다.      


 요즘에 나는 책을 한 권 쓰고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경험했던 것을 후배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지식들과 정보들, 그리고 경험들과 생각들을 정리해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얼마 전, 직장 선배에게 요즘 책을 쓰기 위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니 선배가 물었다. '그거 쓰면 수익이 들어와?' 내가 대답했다. '아니요.' 선배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뭐 돈도 안 되는 걸 뭐하러 하고 있니?' 하는 표정으로 지나쳐갔던 기억이 난다.      


 요즘 2030 세대에게 핫한 키워드는 '경제적 자유'이다. 미국의 파이어족(FIRE)에서 시작된 '경제적 자유'라는 흐름은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에서 하나의 '구호'처럼 번지고 있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무자본 창업으로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준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편으로는 기쁜 소식이라고 생각한다. 9시에 출근해 6시까지 정시근무를 하며, 조직의 이러저러한 비합리적, 비효율적 관행들을 묵인하며 은퇴할 때까지 견디고 살아가는 선배들의 삶에 의문을 던지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삶의 문법을 써보려고 하는 움직임을 응원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의 '경제적 자유'에는 두 가지 한계점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자유는 아직 '소극적 자유'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소극적 자유란 '~로부터의 자유'로 '어떤 주체가 타자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는가'를 묻는 자유이다. 경제적 자유를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빨리 돈을 벌어 조직에 얽매여있지 않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경제적 자유 그 이후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이후 무엇을 위한 자유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데이비드 프레인은 책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이란 자기가 가진 기술적, 미적, 사회적 기준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도록 허용하는 노동, 다시 말해 효율성, 아름다움, 유용성을 자기 나름대로 정하고 그에 맞게 일하도록 허용하는 노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각기 다른 특성과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 만의 기준을 가지고 그에 맞게 일 할 수 있는 일을 꿈꾸는 '적극적 자유'로 한 단계 발전하기를 바라본다.       


 첫 번째 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한계점은 이러한 경제적 자유에 다다를 수 있는 사람이 구조적으로 너무 소수라는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효용성이 있는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내적 의지, 그리고 자신의 관심사와 시대적 흐름이 일치해야 하는 운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20대 30대에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특히나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급격하게 치솟아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10억이 되어버린 지금 이 시점에 과연 얼마가 있어야 경제적인 자유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사업을 하다 보면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르신, 부모의 잦은 싸움으로 집을 나온 청소년 등 다양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사회적 약자들에게 '경제적 자유'를 이루라고 부추기는 것은 걷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뛰라고 하는 것과 같다. 비단 사회적 약자들 뿐만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도 더욱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기도 힘들어질 것이다. 점차 구체화될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고도화된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소수의 일자리를 제외하고 점차 AI에 의해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부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속도를 더할 것이다. 자본 소득이 근로 소득을 능가하고 상위 1%가 전체 자본의 90% 이상을 소유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2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첫 번째는 국가에서 개인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력을 지원해주는 방법이다. 이는 찬반의 의견이 분분한 제도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필수적인 제도라고 본다. 그 이유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여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한 명의 부자가 있다. 이 한 명의 부자가 핸드폰 회사의 사장이라고 해보자. 이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핸드폰을 사줄 적정량의 소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 명의 부자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100개의 핸드폰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런데 회사가 모두 자동화가 되어 직원이 필요하지 않아 모두 해고시켰다. 그렇게 되자 문제가 생겼다. 회사에서 만든 핸드폰을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망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제도를 실행하기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하고 모든 국민에게 모두 같은 금액의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적 분배를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필요할 제도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방법은 일 바깥의 세계에서 나를 찾고, 타인을 만나 사회적 연대를 만드는 것이다. 데이비드 프레인은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맺는다. '일 중심 사회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상품을 통한 관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연대와 목적의식을 성취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사회는 너무나도 슬픈 사회라고.'      


상상해본다. 자본주의 경제가 제공하는 좁은 직업 역할 바깥에 있는 비공식적인 관계망 속에서 자기 재능과 역량을 다른 여러 방향으로 활발히 발휘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자본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소비를 줄이고 환경을 덜 파괴하는 생활방식을 배워가며 건강, 안전, 동지애, 자율, 존중받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느낌, 그리고 공동체와 환경에 연결된 느낌을 받는 사회를. 지금의 사회보다는 훨씬 더 행복할 것이다.      


너무 이상주의라고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상상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나는 현대 자본주의의 노예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한 명의 인격체로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일할 권리뿐만 아니라 일하지 않을 권리를 찾고 싶다.                


『일하지 않을 권리』데이비드 프레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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