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록의 쓸모』
우리나라에서 배달의 민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달통, 요기요 등 국내 배달 앱 기업 중 1위 기업으로 우뚝 선 기업으로 현재 한국을 넘어서 해외 시장에도 그 영역을 넓히고 있는 명실상부 배달앱 1위 기업이다. 그런데 왜 '배민'은 다른 경쟁사들을 제치고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에 대한 대답은 바로 '마케팅'에 있다. 배우 류승룡이 나온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카피로 B급 감성과 재미로 젊은 세대들의 흥미를 끌기 시작해, 2015년부터는 '배민 신촌 문예'라는N행시 공모전을 열어 수많은 전 국민이 B급 문화에 발을 들이게 만드는 일을 저질러 버리며 많은 사람들을 배민에 입덕하게 했다. 또한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이끌거나, 따르거나, 떠나거나!'등 '일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이 SNS를 통해 공유되면서 업무 만족도가 높은 조직의 문화를 보여주며 내부 마케팅까지 잘하는 회사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재를 모으기도 했다. 이렇게 외부 마케팅뿐만 아니라 내부 마케팅까지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에 지금의 배민이 그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읽은 책 '기록의 쓸모'는 이러한 문맥에 맞닿아 있다. 이 책을 쓴 '이승희'씨는 배달의 민족 마케터로 6년간 일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어느 정도 독자의 관심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다른 배달의 민족 마케터의 글과의 차별성을 가지고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쓴 『배민다움』이라는 책에서 '배민의 마케팅'에 대한 내용을 이미 언급한 바 있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럼 이 책이 이러한 한계를 넘어 베스트셀러가 되도록 만든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무엇일까?
저자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적 없는 '아웃사이더'였다고 한다. 치기공을 전공한 저자는 작은 치과 병원에서 마케팅 일을 시작해 지금의 배달의 민족 마케터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No 근본'이었던 저저가 어떻게 지금의 '마케팅 전문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기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가는 것이 그 무기이다. '기록'이 '무기'라,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사실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단어인 '기록'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기록은 나도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도대체 뭘 기록했기에 배민에서 마케터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지?'라는 의문점을 가진채 이 책을 구입하게 되지 않았을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막상 책을 훑어보니 구성적인 면에서는 그렇게 정교한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형식의 글, 자신이 기록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개, 블로그에 저자가 올렸었던 것 같은 짧은 에세이 몇 편, 그리고 저자가 사용하는 기록의 방식, 사용하는 툴 소개 등이 섞여있었다. 책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을 편집해서 급하게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분석과 비판들을 하다가 문득 머리를 스친 생각이 하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록한 적이 있나?' 애석하게도 저자의 행동력과 결과에 비해 나는 한참 모자란 수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결론은 하나였다. '닥치고 배워'
일을 잘하기 위해 기록을 시작했다고 하는 저자는 회의록을 작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일상의 크고 작은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고자 무지노트, 몰스킨 다이어리 등 '종이 노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의 메모 앱, 녹음 앱, 그리고 인스타그램의 '영감계정'이라는 것을 만들어 순간 받은 영감을 공유하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좋은 콘텐츠들을 재생목록에 저장한다고 한다.
이렇게 점차 '관찰'하고 '기록하는' 인간이 된 저자는 단순히 일을 잘하기 위한 목적으로서의 기록을 넘어선 삶의 가치를 위한 기록의 단계로 넘어간다. 매주 '글 쓰는 목요일'이라는 이름으로 긴 글을 쓰며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일본 여행에서의 기록을 모아 책으로 내기도 한다. 그 외에도 '주간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음식 사진 위에 영화 자막처럼 상대방의 '한마디'를 넣어 인스타에 기록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또한 자신의 집에 '하우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다섯 글자 방명록'에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재치 있는 방명록을 쓰게 하기도, '숭식당 메뉴판'을 만들어 놀러 온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일상의 평범한 것들에 재미와 의미를 담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저자가 했던 소소하지만 소중한 발자취를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별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의 눈과 손을 거치면 별것 아닌 것도 특별해지듯, 뭉특함을 다듬어 뾰족하게 만드는 것은 태도에서 시작된다 믿는다. 태도라 말하니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힘'이다. -224p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힘이라. 대추 한 알에서 태풍과 천둥을 보았던 장석주 시인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일로 시작한 저자의 기록은 어느새 그녀를 시인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한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마케팅에 대한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일 잘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는 '내 한 번뿐인 삶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태도에 말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마케터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손까지 책이 쥐어진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또 다른 청년으로서 저자의 실행력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