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복지사 박동현 Oct 04. 2020

전쟁같은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당신을 위한책

정재승 『열두 발자국』

수륙양용장갑차(L.V.T-3C)


6. 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에서 크게 활약한 기동장비가 있다. 이는 바로 수륙양용장갑차(L.V.T-3C)이다. 해병대에서 훈련하는 영상이 나올 때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차량으로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수륙양용장갑차가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물 안과 물 밖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기능이 해안에서 육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상륙 인원 초반 생존확률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 장갑차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번에 읽은 책 『열두 발자국』이 수륙양용장갑차와 닮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뇌인지 분야의 전문가인 정재승 박사가 대중들을 위해 쓴 대중과학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을 토대로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인문학적 지혜들을 전한다. 저자는 과학과 인문학이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륙양용장갑차가 바다와 육지를 이어준다면 이 책은 과학과 인문학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장 '결정장애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서 재미있는 실험 이야기가 나온다. 스파게티 탑 쌓기 게임을 아는가? 이는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20여 개의 스파게티 가닥과  90cm의 테이프와 실, 그리고 한 개의 마시멜로를 가지고 18분의 시간제한 동안 가장 높은 탑을 쌓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에서 이 게임을 실시했을 때 그중 유치원생 집단이 MBA 학생과 CEO 집단보다 평균적으로 더 높은 스파게티 탑을 쌓는다는 사실이다.                


이를 분석해보니 MBA 학생과 CEO 집단은 평소에 최선의 방법을 도출하기 위해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습관을 게임을 하면서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게임 시작 후 16분까지 탑은 쌓지 않고 어떻게 쌓을지 서로 토론만 하다가 마지막 남은 2분 동안 부랴부랴 탑을 쌓고 마지막으로 맨 꼭대기에 마시멜로를 '탁'하고 놔둔다. 그럼 아래 뼈대가 되는 스파게티 면들은 마시멜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후두둑 무너져버린다.      


그렇다면 유치원생들은 어떨까? 유치원생들에게 16분간의 토론은 필요 없다. 그 대신 18분 동안 쉬지 않고 스파게티 탑을 쌓을 뿐이다. 무너지면 다른 방법으로 쌓고 무너지면 다시 다른 방법으로 탑을 쌓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여러 시도를 하면서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실험의 결과를 보여주며 인문학적 질문과 연결 지어 이야기한다. “좋은 의사결정이란 무엇일까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의사결정을 한 후 빠르게 실행에 옮기고,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끊임없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책은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을 보여주며 설득력 있게 삶에 도움이 될 통찰을 전한다. 책에는 이외에도 흥미로운 과학실험, 연구들을 보여주며 ‘놀이의 중요성’,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법’ 등 인간의 문화, 역사, 철학에 대한 질문을 연결 지어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통찰을 선물한다.      


이 책이 수륙양용장갑차와 닮았다고 말한 또 다른 이유는 얼핏 보면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두 가지의 과학적 결과물을 함께 제시하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고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근거가 되는 연구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저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한 두 가지 이상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학적 지식을 모두 이야기하며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3장은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모자라거나, 없거나 한 것’을 의미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과거 세대와 비교하여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살아간다. 결핍을 갖기 어려운 세상이다. 작가는 이러한 ‘결핍’의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악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스로 학교 공부의 부족함을 깨닫기 전에 부모가 알아서 가장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그곳에 보내주는 가정,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무언가 본인이 정말로 원해서 배우고, 열심히 해 본 경험이 없다. 그런 환경은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위기에는 약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 작가는 “저는 우리 사회에 요구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하라! 스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재미있는 걸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젊은이들로, 성취동기로 가득 찬 어른으로 성장하게 하는 길은 그들에게 결핍을 허하고 무료한 시간을 허락하는 것입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터널 비전’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며 결핍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한다. 과도한 결핍은 사람을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게 만들어 큰 그림을 못 보게 하며, 특히 결핍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하게 만든다고 한다. 배고플 때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른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의 허기짐을 채울 수 있는 음식에만 온갖 신경이 집중된다. 이렇게 작가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서로 상반되는 내용의 과학적 지식을 정리해 준다. 잡초를 보며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고 했던 어느 시인의 말과 같이 과학도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대는 가히 과학 맹신주의라 해도 좋을 만큼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밝혀진 것이라면 진리가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며 과학적 지식들도 때로는 얼핏 보면 다른 결과를 말할 때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욱 넓은 시선으로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볼 때 균형 잡힌 태도를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과냐, 문과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선택에 따라 한 쪽은 공대에 필요한 지식만을, 한쪽은 인문대에 필요한 지식만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학과 인문학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인문학적 질문이 부족하면 확장될 수 없고, 인문학적 성찰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하면 진리가 될 수 없다. 인문학적 성찰과 과학적 지식의 융합이 필요하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시기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커다란 물결과 코로나 19로 인해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혼돈의 시대에는 여기저기서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흥미를 자극한다.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근거들을 가져와 대중들을 설득하려 한다. 이런 시기에 필요한 것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힘이다. 한쪽의 이야기만을 듣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쪽의 의견을 들어보고 자신이 어떤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위치에 서 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한 후 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쟁 같은 시대, 인문학과 과학을 통섭적으로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춤으로써 자기 내면의 견고한 지적 수륙양용장갑차를 만들어 세상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열두 발자국』을 권하고 싶다.



정재승 『열두발자국』


매거진의 이전글 세계화가 정말 좋은 것인지 의문을 갖는 당신을 위한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