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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Sep 12. 2020

삶이 지루해진 당신을 위한 책

<다시, 책은 도끼다>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은 작업을 합니다. - 책은 도끼다-



2016년 만나게 된 책 한 권, 고등학교 때 알게 된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의 저자 박웅현의 인문학 특강을 엮어낸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나의 독서 시계는 새로운 시침을 얻게 되었다.


뒤로 가는 시침. 빠르게 앞으로 앞으로만 가던 나의 독서 시계를 천천히 가게 만들었다.


쏟아지듯 나오는 새로운 책들과 그 속도에 맞추어 '빨리 읽기'에 대해 이야기하며 속독 방법을 설명하는 많은 책들 사이에서, 마치 정신없이 수많은 나무를 베어버리는 전기톱들 사이에서, 둔탁한, 그러나 통쾌한 소리로 정직하게 나무를 쪼개는 한 자루의 도끼와 같이, 책을 읽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준 책이었다.


솔직히 그랬다. 책을 읽었어도, 일주일이 지난 순간, 내 머리에, 그리고 내  가슴에는 책의 실체는 사라지고 책의 환영만 남아, '아, 나 이 책 읽었어' 밖에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책들이 수두룩했다.


그러나 이 책 이후, 책에 밑줄을 긋기 시작했고 책에 대한 나의 감상과 비평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기게 되었다. 책모임을 만들어 책을 후벼 파기 시작했고 책을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2018년 초 여름. 시간은 흘렀고, 잘해가고 있던 나의 독서 도끼에도 녹이 슬었다. 게으름에, 핑계에 책 읽기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그런 무뎌져 가는 나의 도끼에 새로운 날이 되어줄 책이 나의 손에 들어왔다.


       


전 편에 이어 다른 책들에서 기어 올린 수많은 좋은 문장들이 들어있었고 다시금, 책 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왜 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있는 것만 예술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깁니다. 바로 내 눈앞에도 예술이 있을 수 있는데요.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고 말했죠. 이게 바로 책을 읽는 이유입니다. -35p-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그 물음에 대한 이 책의 대답이다.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눈을 통해 '이미 있던 것들'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독서의 이유이다. 이 전 편에서는 이를  '민감한 촉수'를 갖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의 풍요

성찰의 풍요

감성의 풍요

시를 읽으며 책을 읽으며

시(視)에서 견(見)으로

청(聽)에서 문(聞)으로

같은 것을 보고도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같은 것을 듣고도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는 것.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위로를 받고

화들짝 놀라는 길고양이의 모습에서 미안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오감의 촉수를 갖게 되는 것


이러한 '일상의 발견'이 우리 삶을 채우게 된다면 삶의 풍성함은 그 어떤 경제적 잣대로 들이댄들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이번 책에서 더 나아가 느끼게 된 것은 '비 키치' 즉, 비 편집된 삶의 모습들의 재구성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들은 대게 편집된 세계, 드라마와 영화에서와 같이 잘 각색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제 세계는 어떠한가.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소설 <돈키호테>를 통해 이야기한다.


삶은 산문의 세계인데,  우리가 읽고 있는 건 운문의 세계인 거죠. 우리는 운문의 세계만 보는 거예요. 그것이 낭만, 즉 로맨스죠. 그런데 세르반테스는 그걸 걷어내고, 우리가 치통을 느끼게 두죠. -221p-


돈키호테 이전의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완벽'했다. 마치 우리가 꿈꾸는 삶처럼, 그러나 돈키호테의 인물들은 그들의 미덕 때문에 찬양받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 인물들은 그 대신 '이해'받기를 원했다. 우리는 운문의 세계에 살고 싶어 하나 실제는 산문과 같이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육체적인 성격을 띤, 책의 글귀를 빌리면


절세 미녀의 똥, 자상한 아버지의 폭력, 7성급 호텔의 쓰레기 냄새, 배은망덕한 자의 의리-245p-


와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일상'의 모습은 항상 밝지만은 않다. 지루하고, 반복되고,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되는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우리는 SNS를 통해 몇 안 되는 우리의 찬란한 순간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프루스투는 이러한 모습을 비판한다.


현실세계에서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가 그것이 과거에 위대한 예술 작품 속에 표현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런 자세가 우상숭배의 첫 번째 유형이다. 『프루스트』-41p-


우리가 그것들을 아름답다고, 자랑할 만하다고 느끼는 것은 진정으로 우리가 그렇게 느껴서가 아니라 과거 위대한 예술 작품 속, 다시 말해, 드라마, 영화, 광고, 사람들의 입소문, 등 편집된 프레임에 의해 만들어진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하는 사회적 압력 때문일 수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조명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무의미'이다. 중요한 것은 '무의미의 축제'를 찾는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가 찾아낸 '아름다움'으로 나의 삶을 '알아차려'가는 것.

그리하여


찬란한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 매 순간을 찬란하게 만든다 -211p-


수동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적극적으로 내 삶을 해석하고 만들어 나가는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위해 책에서는 몇 가지 관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목표가 곧 인생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 -86p-


물론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필요하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인생이 덧없는 것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육체노동이 정신적인 삶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육체노동을 할 때만이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하다. -톨스토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108p-


독서가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실제 삶이 없다면 그 시각 또한 무슨 의미일까. 현대 사회는 육체노동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한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공연도 배가 고프면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녀야 할 한 가지의 중요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나는 성급함과 초조함과 서두름을 극복했다. -188p-


경쟁하듯 서두르지 말 것, 양적으로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으니, 시험 준비하듯 하지 말고 할 것을 강조한다. 이렇게 삶을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호흡하는 일이 참으로 즐겁게 느껴진다 -90p-


호흡하는 일 마저 즐거움으로 느껴진다면, 이 삶, 살만한 삶이 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며 밑 줄을 그으며, 발췌를 하며, 그 자체로 너무 행복했고 좋은 시간이었다. 어떤 결과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고 경험이었다.


물론 모든 일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있고, 하고 싶지만 형편상 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아 가는 것은 힘듦과 즐거움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는 것이다. 힘들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고 즐겁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세,  <다시, 책은 도끼다>를 통해 또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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