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시장의 키워드는 누가뭐라 해도 '전기차'다. 2000년대 초 전기차가 시장에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전기차는 친환경적이고 연비가 좋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짧은 주행거리, 작고 느리다는 단점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2009년 테슬라가 모델 S를 출시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한 수준의 주행거리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무장한 테슬라의 자동차가 출시되고 해가 갈수록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안전의 대명사 볼보에서 203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만을 생산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시대는 가고 전기차의 시대가 오고 있다. 어떤 방식의 성장과 변화를 이루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전기차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내연기관이 달린 자동차는 근대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위에 세워진 근대사회는 산업혁명이라는 원동력을 추진력으로 유럽, 아메리카를 넘어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성장 이데올로기'를 주입시켰다. 그것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고리를 끊고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이데아적 이상을 전 지구에 퍼뜨렸다. 그 결과 수많은 자연은 파괴되고 그 위에 철도와 도로가 깔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우리가 파괴하는 자연의 끝에는 우리 자신이 있다는 것을. 끝없는 양적 성장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마르의 삶'이라는 유투버의 '인생 25살 이전과 이후'라는 주제로 찍은 영상이 있어 보게 되었다. 영상의 핵심 내용은 이와 같다. 25세 이전에는 눈에 뚜렷히 보이는 성장이 있었다. 한 해가 가면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고 키가 160cm에서 180cm로 자라났다.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25살이 되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가만히 있어도 더 이상 올라갈 학년이 없다. 키는 성장을 멈춘 지 오래됐다. 끝없는 양적 성장은 인간 개인의 차원에서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 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자동차로 본다면 그것이 전기차로 대표되는 친환경자동차인 것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다. 자연을 갉아먹지 않으면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끊임없는 양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노력에서 찾게 된 하나의 방법이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25살 이후 사회로 나온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앞으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 얻을 수 있는 내적 성취감이다. 이는 아주 간단한 '아침에 이불 개기'부터 '세상에 있는 빈곤을 없애기'까지 아주 넓은 범위를 아우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양적 성장이 아니라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질적인 성장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을 목표로 할 때에만 우리는 사회로부터 착취당하지 않을 수 있다.
두번째로 전기차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해겔의 변증법적 성장이다. 변증법은 무엇인가? 헤겔은 정, 반, 합의 순서로 역사는 발전한다고 했다. 하나의 주장이 나오면 얼마 뒤 그에 반하는 주장이 나타나고 결국은 그 두 가지 주장을 종합할 수 있는 주장이 나와 진보를 이룬다고 이야기했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입장에서 보면 전기차의 출연은 '소멸'이지만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보면 '반'에 의한 자동차 시장 전체의 '진보'로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주류가 되는 이론, 또는 자신이 정통한 업무 방식이 생긴다. 그 방식이 유용하고 효과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오면 정체기가 온다. 그 이유는 그 방식이 특정한 환경에서 유의미했기 때문이다. 환경이 변하는 순간 기존의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인간은 뚜렷한 이익이 있지 않는 한 기존의 것에서 변화하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다. 성장과 변화를 하는 이유가 더 강한 힘을 갖기 위함이라면 정에서 반 그리고 합으로 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여기까지 내가 이루고 싶은 성장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변증법적 성장' 그리고 '지속가능상 성장'이라는 주제로 글을 정리했다. 글을 쓰며 의욕도 생겼지만 한 편으로 찜찜한 부분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전기차도 많이 만들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을 해치게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도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자기부정을 해야만 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더 나은 나라는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그냥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는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