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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바인 Dec 18. 2016

나도 '덕후'가 되고 싶다

 많은 것들이 스치듯 소비되는 시대에 한 대상을 오래도록 진득하니 사랑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덕후’들이 그렇다. 과거엔 부정적으로 여겨졌던 ‘덕후’라는 단어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문성과 열정이라는 가치를 끌어안으며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골방처럼 어둡고 무거웠던 이미지도, 대중적으로 떠오를 만큼 가벼워졌다. 취미를 넘어 그것을 삶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은 아름답다.

 무언가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이고 또 어떤 느낌일까. 나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좀처럼 깊게 몰입하고 애정을 쏟지는 못하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두루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축구 클럽 중에서는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선수는 파벨 네드베드, 좋아하는 밴드는 슬립낫, 영화감독은 홍상수(지금은 일종의 금기어가 된), 헤드폰 브랜드는 그라도, 커피는 인도네시아 만델링. 나는 어느 분야든 호불호가 강하고 색채도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그 온도를 흠뻑 느낄 만큼, 그 속으로 풍덩 빠지진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덕후’들이 부럽다.


 마땅한 취미가 없는 사람들이 참 많다. 독서와 음악 및 영화 감상은 전 국민의 취미 생활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나처럼 좋아하는 것은 많지만, 어떤 한 대상에 깊이 있게 빠져드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떤 대상에 깊이 몰입하는 ‘덕후’가 주목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순수한 열정에 목말라 있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지 못하고 있고, 사회는 본업에 열정을 쏟아붓는 것이 삶의 보람을 얻는 방법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흥미 없는 일에 억지로 불을 지핀다 해도 끝내 재 밖에 더 될까. 본업에서 보람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 공허를 채우고 색다른 쾌감을 얻기 위해 취미를 찾는다. 그런 면에서 ‘덕후’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취미와 직업이 한 몸이 된 ‘덕업 일치’를 이룬 사람들은 하나의 성공 표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물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음으로써 또 다른 고충과 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취미를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취미는 습관과는 달라서 반복적으로 한다고 재미가 붙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흥미를 붙일 만한 대상을 찾는 것도 꽤 막연한 일이다. 내가 본 어떤 브런치 작가의 글에선 덕후가 된다는 것이 천생연분을 만나는 것만큼 우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취미생활과 연애는 일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우연히 조우하게 된 누군가를 두고 ‘오늘부터 이 사람을 사랑해야지’, 마음먹는다고 해서 연애 감정이 부푸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동반자처럼 곁에 두고 늘 애정을 속삭일 수 있는 대상이 있었으면 한다. 즐겁게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무구無垢하게 열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연인과는 달리 때로는 소홀해도 부담스럽지 않은 것. 그래서 나도 ‘덕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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