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2010, 민용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프고 아픈 이야기 <혜화,동>
작품의 주인공 혜화는 아이를 낳았지만 엄마가 되지 못했다. 혜화의 엄마는 그녀의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죽었다고 말했다. 현실을 온전히 감당하기 힘들었던 열여덟 살짜리 부모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잃은 아픔과 마주한다. 아이 아빠인 한수는 혜화가 출산의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일언반구도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한편 배신당한 혜화는 버려진 마을에 버려진 개들을 돌보며 묵묵히 살아간다. 그녀가 동물 병원에서 일하며, 버려진 개들을 거두는 것은 아이를 잃은 상처와 죄책감을 어떻게든 보듬기 위한 심리의 발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차마 지우지 못한 모성에 대한 애달픔은 종종 고개를 들어 내면을 비집고 나온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혜화 앞에 다시 한수가 나타난다. 캐나다로 떠났다던 한수는 웬일인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혜화만큼 사연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버림받았던 혜화는 거칠게 한수를 밀어내지만, 한수는 그들의 아이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당시 아이가 양 집안의 합의로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혜화는 간단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진동은 혜화가 갈망했던 모성을 다양한 형태의 파장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왜 나는 아니에요?"
열여덟 살 혜화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가 되긴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되고 싶었다. 그녀는 한수의 아이를 배고 나서 학교를 그만두고 네일아트를 배우기 시작했다. 혜화가 꿈꾸던 미래는 한수와 자신의 손톱에 찍었던 분홍빛 점처럼 달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이 쉼표가 아닌 마침표가 될 줄은 몰랐다. 한수는 사라졌고, 사랑은 끝났으며, 아이가 떠났다.
스물세 살이 된 혜화는 여전히 엄마가 되고 싶다. 버려짐과 상실로 얼룩진 과거는 그녀의 멍든 모성을 더 아프게 눌러댄다. 동물 병원장인 정헌의 어린 아들 현웅은 그녀가 이루지 못한 모성을 자극한다. 혜화는 일찍 엄마를 여읜 현웅을 꼭 엄마처럼 돌본다. 정헌은 그런 혜화를 고맙게 여기고 현웅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려 한다. 현웅은 만면에 웃음을 피우고, 그녀를 바라보며 입모양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그린다. 혜화도 그런 현웅을 마주 보며 웃지만, 이내 쓸쓸히 눈길을 거둔다. 그녀의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현웅의 나이 정도 되지 않았을까.
처음에 혜화는 아이가 살아있다는 한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한수가 말없이 내밀고 간 입양동의서를 보고서 복잡다단한 감정에 휘말린다. 혜화는 아이의 입양 사실을 알고서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동의서에 찍힌 엄마의 인감을 확인하며, 새로운 상처만 덧댈 뿐이다. 한수는 아이의 얼굴을 보러 가자고 그녀에게 간청한다. 그러면서 남의 품에서 길러지고 있을 아이에 대해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녀가 그렇게 대응하는 것은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과 이제와 뭘 어쩔 수 있겠느냐는 자조 탓으로 보인다. 고통으로 퇴적된 5년의 시간을 다시 통째로 체감하게 될까 봐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도 망설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아이에 대한 애틋함이 울컥 대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망설이던 혜화는 한수의 안내로 아이가 다닌다는 유치원을 찾게 된다. 애꿎게도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마침 가면 놀이를 하고 있다. 자기 아이로 보이는 옷차림을 발견하고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놓는다. 비록 가면에 가려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아이가 꽂은 머리핀을 하염없이 눈으로 쫓는다.
그리고 정헌의 갑작스러운 재혼 소식은 그녀를 끝내 추동하게 만든다. 혜화는 현웅을 자식처럼 돌보며 애정을 쏟았지만, 결국 현웅의 엄마로 선택된 사람은 혜화가 아니었다. 현웅에게 대신 채우던 모성의 자리마저 상실되는 순간, 그녀는 "왜 나는 아니에요?"라고 아프게 묻는다. 그 물음은 아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절벽 끝에 다다른 듯 위태롭게 느껴진다. 그런 위태로움은 '내가 낳은 아이가 거기에 있는데, 내가 왜 가만히 있어야 하지'라는 충동으로 전이된다. 비록 단념하긴 했지만, 그녀가 다시 유치원에 찾아가 아이를 몰래 데리러 나오려 했던 것은 그런 충동에 기인한 것일 테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렇다면 한수는 어떨까. 그는 혜화가 다시 유치원에 찾아가 아이를 데리고 나오려 했던 것을 목격했다. 그녀가 마음을 접었던 대신, 한수는 기어이 아이를 데리고 혜화의 집에 온다. 한수는 또다시 간청하며,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고 한가족으로서 하룻밤을 보내자고 설득한다. 그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의 부성이 그렇게도 절실하고 뜨거웠던 걸까. 아니면 단지 그녀를 배신했던 것에 용서를 빌고자 하는 것일까.
한수의 시간은 어땠을까. 그의 엄마는 아들을 캐나다가 아닌 지방의 외딴 기숙학교로 '피신'시켰다. 한수는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지만, 그 앞에서 비겁했고 한없이 두려웠다. 그 또한 두려움에서 파생된 죄책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 발견하게 된 입양동의서 앞에서 그 역시 크게 흔들린다.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은 그를 죄책감에 더 옭아매기도, 한편으론 벗어날 단초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는 졸업을 목전에 두고서 학교를 그만두었고 가족과도 멀어진다. 그는 누구와도 동떨어져 살아간다. 그는 혜화와 달리 아이에게 속죄하고 죄책감을 덜어낼 방법을 찾지 못했다. 혜화가 버려진 개들을 돌보고 현웅을 엄마처럼 끌어안으며 발버둥 쳤던 것에 비해, 아이가 살아있음을 알게 된 한수는 유령처럼 떠돌기만 했다. 그는 표류 끝에 군입대를 선택하지만, 그만 다리를 다쳐 의병 제대를 하게 된다. 군 병원에 누워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한수는 비로소 자신의 죄책감을 덜 유일한 방법이 아이를 찾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밖으로 나와 입양된 아이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절룩거린다.
영화 말미에 그들이 하룻밤을 보낸 아이가 실은 그들의 아이가 아니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당시에 입양동의서 작성이 끝나고 나서 아이가 곧 사망했다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한 가지 진실에 두 사람의 반응은 양편으로 갈린다. 혜화는 아이가 죽었다고 단호히 말한다. 그러나 한수는 그런 혜화가 모질다고 말하며, 아이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아이와 혜화에게 속죄할 기회를 잃었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는 혜화와 달리 죄책감을 좀처럼 체화하지 못한다. 한수는 과거에 비겁했지만, 그런 면에선 한없이 가엾다. "인정하기 싫다고 해서, 되돌릴 수 있는 거 아니잖아."라는 혜화의 말은 한수를 눈물짓게 만든다.
너에게 뒷걸음치기까지
그렇게 그들의 아이는 두 번 죽었다. 5년 전 병원, 그리고 지금 다시 여기서. 혜화가 개를 구조하던 버려진 마을에 모인 두 사람은 다시 갈라진다. 그들의 아픈 드라마는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는 걸까. 차를 몰아 마을을 벗어나던 혜화는 한수를 지나쳐가고, 백미러에 비치는 그의 절룩거리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혜화는 브레이크를 밟아 그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찰나의 순간, 그녀의 얼굴엔 많은 것들이 스치는 듯하다. 끝내 혜화는 젖은 눈망울로 후진 기어를 넣고 한수를 향해 뒷걸음질 친다. 그 뒷걸음질은 완전히 포용적이지도, 또한 조심스럽지도 않다. 그저 '너도 많이 아팠겠구나'라는 안쓰러운 감정 하나가 묻어난다. 더 나아가 '아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그렇게 한 번 믿어보자'는 식의 능동적인 움직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혜화의 뒷걸음질이 한수에 대한 용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녀의 행동이 두 사람의 미래를 감싸 안을 불씨가 되리라는 희망이 반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움직임이 보는 이로서 고마웠고 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