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은 언제나 질 나쁘지
질 나쁜 사랑을 하는 데에 능했다. 어려서부터.
그래도 여기는 세탁소 가장 안쪽까지는 아니예요 저 안쪽엔 입지 않은 외투가 많아서 안 돼요 저도 잘 들어가지 않거든요
수지타산이 안 맞는 마음을 간직하고 지점토 굴리듯 조금씩 키워나가는 취미가 있었어 열 세살 여름에 방송반 친구랑 단 둘이 기물 정리를 하다가 마법처럼 그 애에게 반해버린 날, 그 날은 그러니까 7월이었나 아니면 8월이었나, 어제만 해도 마이크 스탠드를 휘두르며 장난을 치던 내가 호주머니에 든 것을 다 꺼내어 내주는 쑥맥이 되어버리기까지 만 하루가 채 안 걸렸지. 오토바이 타고 달리며 손가락 사이에서 떠나보내는 일수 명함처럼 터무니없고 끊이지 않는 마음들, 그건 아마 여전히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의 구름사다리 아래쯤에 유적처럼 묻혀 있을 거야
아무도 찾지 않는 박물관이 되었지 나는 박물학의 대가 아무도 궁금하지 않고 존재했는지 모르는 오래전의 것 그런 마음을 남몰래 꺼내서 들여다보고 만지고 만져서 다른 모양이 될 때까지 기어이 붙들고 놓지 않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여전히 멀어지지 못했다. 요즘 말로 어른이 못 되어서
깨진 거울을 너무 매만져 다른 모양이 되어버렸기에 마음도 믿음도 확인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기를 반복했다 파경의 고사를 따르듯 멍청하게 마음이 흘렀고 깨진 금빛 호른처럼 쨍쨍 울리면 귀를 막지도 못했다 속이 잔뜩 시끄러우면 아 이게 사랑이구나 싶었다
내게 처음으로 박정대의 시를 일러준 이가 있었다 나는 자주 그 애의 등 뒤에서 껴안아 주었다 숨을 자그맣게 쉬는 짐승 같았다 한번도 사람 아닌 것을 안아본 적 없었는데 그 애를 안을 때는 부드러운 짐승을 안는 것 같았다 머리통을 꾹꾹 누르면 잘한 것도 없는 주제에 울어댔고 해줄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매번 져 주었다 그러다 달아났다 네게 닿았던 순간이 그저 표류였던 것처럼
우리의 이름을 엮어 만든 농담을 인사로 만들어 전화할 때마다 흔들었고 안녕 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떠나보내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붉은 색 보도블럭을 밟지 않으면 불행이 안 올 거라 믿는 순진한 애들처럼
우리가 한 건 질이 안 좋았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치고는 말이야. 사랑 안에서 사랑을 호명할 수 없다고 믿어서 자꾸만 헤맸는지도 모르겠다 어쩌자고 널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그 말 대신에 어쩌자고 종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그 문장으로 그리움을 갈음하고 마는 비겁함 때문에
사랑했지 네 누추함과 무책임함을
방에 나란히 누워 문장을 시를 읽어주면 그 목소리로 가득 찬 방에서 너를 안으면 그걸로 다였지 질이 안 좋았어도 이걸 연애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실 한번도 그래본 적 없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그 한 귀퉁이에 걸려 있는 문장들 내가 너의 귓바퀴에 입술을 얹고 불어넣던 진은영과 이수명과 강성은 이제니 혀를 진득하게 굴려 발음해내던 랭보의 문장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아서 찾아갈 아무개가 없어서 주렁주렁 걸려 있는
위생학의 대가인 당신들이 손을 뻗어 사랑하는
나의 이 천부적인 더러움을*
나만 보고 나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