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 국민연금을 받았다.
우편으로 발송된 연금 안내문에는 큰 글씨로 ‘평생월급 국민연금’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우리 부부에게는 시의적절한 문구라고 느껴졌다.
남편은 5년 전, 명예퇴직을 했다. 63세부터 지급되는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1년이란 기간이 남아 있었지만 시기를 앞 당겨 받기로 했다. 통장에 찍히던 월급 액수가 사라진 5년 만에 다시 숫자가 찍히는 연금액수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연금수령 일자도 월급날이었던 25일과 같은 날짜여서 다시 월급을 받는 기분이었다. 생활비로 충당하기엔 적은 금액이었지만 ‘정기적으로 평생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매력이었다.
남편이 퇴직한 해에는 딸도 결혼을 앞두고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고 아들은 임용이 되기 전이어서 나는 “우리 집엔 돈 버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하며 다소 불안한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후에 아들이 임용이 돼서 월급 받는 가족이 생겼지만 연급을 받는 지금의 기분에는 못 미쳤다. “우리는 노령연금으로 생활한다”는 친정 부모님의 마음을 알 거 같다.
나는 남편이 퇴직하기 몇 년 전부터 퇴직한 지인들에게 한 달 생활비 규모를 묻고는 했다. 아이들 교육과 지원이 끝난 부부들이 말하는 생활비 액수는 대개 비슷했다. 나는 남편에게 퇴직 후에 어느 정도의 수입을 가질 수 있는지 물었고 남편은 몇 개의 연금저축을 들었다며 은퇴 후 몇 년 후부터 개시될 연금수입에 대해서 수시로 설명해주고는 했다.
연금수입이 없던 지난 5년간은 필요할 때마다 퇴직금에서 불규칙적으로 소비를 하다 보니 지출이 실감 나지 않았다. 우리 가계 사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퇴직이 실감 나지 않으니 지출도 줄지 않았다.
연금을 받으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 지출을 생각하는 마음이 꼼꼼해졌다. 국민연금과 연금저축의 연금(사적연금)을 받게 되면서 정기적인 수입이 생기니까 ‘수입에 맞는 지출’이라는 구호가 자동으로 생겨났다.
남편은 국민연금 액수가 상위권에 든다며 ‘자신이 대견하다’ 했지만 이 전 월급에 비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교사로 퇴직한 지인들의 몇 백이 넘는 연금에는 더욱 비할 바가 못 됐다. 보험료율이 달라 공무원 연금에 비해 현저히 액수가 적은 국민연금 시스템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가지 고정비를 내고 나면 연금의 절반이 훅 사라졌다. 새삼 그동안 지출의 규모가 컸다는 생각이 든다. 지출을 잘 살펴서 슬기로운 경제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하루하루의 지출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신혼 초에 잠깐 썼던 가계부를 다시 쓰게 된 것이다.
지출 항목을 적을 때마다 돈의 소중함이 새삼 느껴진다. 만 단위, 천 단위의 숫자까지 꼼꼼하게 적다 보면 생활이 손에 잡히는 느낌이 든다. 지출이 많은 날은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 달은 갑작스러운 치과진료와 부모님의 보청기 금액을 보태느라 며칠간의 지출이 평소 한 달 생활비를 훌쩍 넘기게 되었다.
가계부를 적다 보니 특별비 지출의 비중이 의외로 컸다. 충동 지출이 많았던 소비패턴도 뒤돌아보게 되었다. 요즘같이 구매시스템이 쉬워진 세상에서 충동 지출이야말로 경제생활의 적이다.
두 아이 육아에 허덕이며 늘 문 앞에 택배 상자가 쌓이는 딸에게 “필요 없는 지출을 줄이는 것이 슬기로운 경제생활의 답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옷을 사면 늘 두 벌 이상을 사야 하는 내 소비습관에도 브레이크를 걸었다. 젊어서 아직은 연금저축에 관심이 없는 아들과 딸에게 적은 액수라도 연금저축 한두 개는 미리부터 꼭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평생월급이 되는 연금이 내게 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