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는 바둑을 복기하고, 나는 인생을 복기한다

하루 5분 글쓰기

by 안상현

바둑에는 '복기(復棋)'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대국이 끝난 후, 승자와 패자가 마주 앉아 처음부터 다시 놓아보는 과정이다. 이긴 사람은 승리의 원인을, 진 사람은 패배의 아픔을 돌아본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매일 밤 자신의 하루를 꼼꼼히 복기했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지나간 일을 왜 굳이 들추느냐고. 괴로운 하루였다면 술 한 잔으로 잊어버리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나는 반문한다. 잊어버리면 그 하루는 '사라진 시간'이 되지만, 복기하면 그 하루는 '나의 경험'이 된다고. 나에게 매일 쓰는 글은 바로 이 치열한 삶의 복기다.


살다 보면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날이 있다. 누군가는 술을 마시며 "한순간도 깨어있고 싶지 않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망각은 치료제가 아니다. 술이 깬 다음 날, 현실은 더 비참하게 다가온다.


나는 버티는 걸 좋아한다. 아니, 살기 위해 버티는 법을 배웠다. 삶이 거센 파도처럼 나를 밀어낼 때, 휩쓸려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 생각을 뿌리 깊게 내려 박는 것이다. 매일 쓰는 글은 나의 선택이란 바둑돌에 책임을 올리는 의미다. "나는 오늘 이렇게 살았다"라고 글로 남기는 건, 내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드라마 속 대사처럼 우리는 아직 다 미생(未生)이다. 불완전하기에 실수하고, 서툴기에 상처를 주고받는다. 바둑판을 엎어버리지 않고 복기하는 한, 우리는 패배보다 배움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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