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질문으로 완성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슬며시 입을 다물 때가 있다. 상대방의 말에 허점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 사람의 행동이 완벽해서도 아니다. 내 눈에도 분명히 보이는 그 '단점'을 굳이 내 입으로 꺼내어 확인 사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나는 달랐다. 예리한 비판이 지성인의 덕목이라 착각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문제를 짚어내고, "이건 이렇게 고쳐야지"라고 조언하는 것이 상대방을 위한 길이라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상대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나를 돋보이게 하려던 얄팍한 인정의 욕구였다.
나이 오십을 넘기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은 지적으로 바뀌지 않고, 감동으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단점을 지적받아 고치는 사람보다 장점을 인정받아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나는 침묵을 선택한다. 비겁한 회피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을 말하기 위한 '선택적 집중'이다. 하루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10살 딸아이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귀한 시간에 굳이 아픈 곳을 찌르고, 부족한 점을 들춰내어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 이유가 있을까?
아이가 서툰 젓가락질을 할 때 "그렇게 잡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 대신 "오, 반찬을 집으려는 시도가 아주 야무진데?"라고 말해주자. 아내가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것을 탓하는 대신, 그동안 챙겨준 수만 가지의 배려에 대해 이야기하자.
장점만 말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당신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네가 얼마나 빛나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인지, 우리가 함께 걷는 이 길이 얼마나 근사한지. 감사와 격려를 이야기하기만 해도 하루가 짧다.
단점이 없어서 말하지 않는 게 아니다. 장점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대화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