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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히 마주친 Nov 25. 2024

엄마 아빠의 경조사 참석을 반대하는 이유

대한민국 경조사는 경조사가 아니다.

옷장에는 몇 벌의 정장세트가 잠들어 있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면접이든 입을 수 있는 회색, 검은색, 네이비색 정도가 있다. 엄마와 아빠의 것은 열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아마 필자보다 두 배는 많은 개수의 정장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평균적으로 경조사 한 번에 지출되는 돈은 과연 얼마일까? 세금처리도 오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돈 천 원을 내든, 일억을 내든 자유다. 특정 A라는 경조사에 참석한 그룹을 모집단으로 가정하자, 내가 만약 오만 원을 냈고, 나보다 많이 낸 사람이 백 명, 적게 낸 사람이 세 명이라 치자. 백네 명 중에서 백일 등을 한 셈이다. 우정의 깊이가 줄 세워지는 것이다. 다른 참석자들이 얼마씩 낼 건지 눈치 빠르게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부대비용도 다 계산에 포함시켜야 한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 특이한 게, 정장을 입은 날에는 떡볶이집이나 셀프로 운영되는 컵밥집에 가지 않게 된다. 평소보다 두 배는 씀씀이가 커진다. 예를 들어서 피로연 끝나고 혼자 입가심으로 호텔 일 층에 커피를 마시러 간다든가, 서점에 들러서 이만 원이 넘는 책 한 권을 살 수도 있다. 정장을 입고 개를 산책시키는 것보다는, 유명 대형 서점 쇼핑백을 들고 걷는 것이 더 어깨가 으쓱 올라가지 않나.

엄마와 아빠는 환갑을 넘긴 후로 거의 매주 주말마다 경조사에 가고 있다. 얼마를 냈는지 가끔 물어보지만, 숨긴다. 특히나 엄마는 탁구 레슨에서 알게 된 사람이 상주가 된 장례식까지 다녀왔다.

결혼식에 간다며 스틸레토 구두를 신고 현관을 나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토하기 직전에 약하게 신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씁쓸한 맛이 느껴진다. 지금껏 갖다 바친 돈을 다 합치면 수천만 원이 될 텐데. 진부한 말로 '결혼식은 부모 성적표, 장례식은 자식 성적표'라는 말이 있다.

돈 걷을 수 있는 기회는 국한되어 있고, 나이는 점점 먹어가는데, 이자가 붙지는 않는다. 십 년 전에는 오천 원이면 순대국밥을 사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만 원은 있어야 한다. 먼저 받는 사람이 100% 유리한 채무관계인 것이다. 물론 나중에 돌려받지 못했다고 사기죄로 신고하지는 않겠지만 사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은 맞을 거다. 법이라는 게 현실과 동 떨어진 점이 있어서 한 개인이 고혈압으로 쓰러질 정도의 타격을 받는 일도 사실 적법인 경우가 있다.

어제도 한 건의 결혼식이 있었다. 아빠의 전 직장동료의 아들인지 딸인지라고 했다. 엄마도 참석했다. 아마 성격상 맨 앞은 아니고 앞 줄에서 네 번째 정도, 약간 벽 쪽에 붙은 자리에 앉았겠지. 라식, 라섹 수술을 할 때 1번 환자를 눕히고, 각막을 깎아내고, 내보내고, 2번 환자에게도, 3번 환자에게도... 종일 반복하는 것처럼. 아마도 흰색 계열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주인공이 나타나면 삼십 분 내로 행진하고, 웃고, 울고, 사진 찍었겠지. 그랬겠지. 버진로드 뒤편의 문 속에는 또 다른 신부가 숨겨져 있었겠지. 개안기로 눈꺼풀을 벌릴 사람처럼 초조해하면서.

가끔 상상한다. 어쩌면 마흔이 넘어서 열릴 가능성이 0.1% 정도 되는 내 결혼식을. 아마 축의대를 지키는 건 낯선 알바생이겠지. 휴지각만 한 상자가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아무도 돈을 넣지 않아서 텅 비어버리고 마는 것을. 노숙자의 텅 빈 구걸바구니처럼. 순식간에 식장 안이 노숙텐트 안처럼 온도가 떨어지는 것을. 엄마와 아빠의 면장갑을 낀 하얀 손은 누구와도 악수하지 못해서 영원히 새하얄 것을. 받은 장부는 잊어버려도, 낸 장부는 눈 감고도 떠올릴 텐데. 엄마와 아빠의 감은 눈에서는 새어 나오지 못하는 눈물이 아른거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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