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나온 대학에는 '기회균등' 전형이 있었다. 사교육을 받기 어려운 기초수급자 학생들끼리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래봤자 과에서 한두 명이었고 대부분은 '그게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2학년 때의 일이었다. 3학점 교양수업 강의계획서를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종강하는 날에는 오천 원 이하의 선물을 들고 와서 교환하는 시간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가격대에 제한이 있어서 무엇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포장지에 싸서 랜덤박스 깜짝 선물처럼 해줘야 하나? 나는 무엇을 받게 될까?"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다음 주 강의 중 교수님이 선물 교환식이 취소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오천 원이 준비 안 될 것 같다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홀로 남아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분이 어땠을까, 싶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인 거다. 원랜 교수님이 내줄까도 생각했으나 자존심(?) 문제로 안 하기로 했다고. 종강하는 날,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작은 공연을 해준 덕분에 그 빈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악기도 있어서 시선을 빼앗겼고, 손이 빨개지도록 손뼉 쳤다. 술 없는 연말파티 같았다. 선물 받지 못한 감정에 대한 대리만족이 된 듯했다. (공교롭게도 전공이 다 달라서 합주가 가능했다. 베이스, 기타, 보컬 등등)
3학년 때의 또 다른 수업에서의 일이었다. 필자는 타과생이었다. 누군가가 수업 단체카톡(이하 줄여서 단톡)에서 교수님이 연출한 공연을 단체 관극하자고 했다. 제일 싼 티켓값이 이만 원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천 원 사건이 떠올랐다. 무의식적으로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었다. "단체 관극은 하지 말고 개인의 선택으로 가는 게 어떤가요. 그 돈 마련 못한 사람은 못 나올 텐데." 하는 의견을 내세웠다. 이견이 없어서 갈등도 없었다. 아마 돈이 있는 몇몇 사람들도 가기 싫었던 눈치였다. 가결되었다. 수업 동지 몇몇은 필자에게 멋있다고 말했고, 별로 동의되지는 않았다. 괜히 총대 멜 필요 없는 일이었는데, 타과면 사실 뜨내기인데 나댄 것 아닐까, 너무 남의 일에 참견하는 행동을 한 것 같다는 후회도 있었다. 지금도 과연 잘 말한 걸까? 하는 생각은 든다. 단체 관극이 추억을 만드는 자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 끝나고 식사도 할 가능성이 높다) 다수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 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도 돈 때문에 출석 점수를 깎이게 한다면 미안할 것 같았다. (이십 대 당시의 생각은 그랬다) 다음에 또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똑같이 할지는 모르겠다.
누구나 오천 원이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어디까지 보호해야 한다의 기준은 없다. 물론 매사에 필자가 100% 다 나서줬던 것은 아니었다. 알고도 그냥 눈 감고 넘어간 적도 있었고, 모르고 지나간 적도 많을 것이다. 다수의 권리와 소수의 보호는 늘 저울질된다. 줄다리기하듯이 엎치락뒤치락. 또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약자가 되면, 누가 나서줄까. 좌우를 떠나서 어디가 여당이 되든 약자 보호를 위한 정책은 꼭 있기 마련이다. '시혜의 대상이 되는' 기준은 제각기 다르지만. 얼마 전, 좋아하는 전직 대통령의 묘를 찾았다. 오전이라 나 말곤 사람이 없었다. 다른 묘보다 두세 배는 큰 봉분을 한참 바라보았다. 안산에서의 일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목례 후 내려오면서도 잔상이 떠도는 게 느껴졌다.오천 원 사건은 그저 지나침 같았지만, 평생 고민하게 만들 수도 있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