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 번호를 물어서 사귀는 것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떠오르는 이미지만 보고 사귀고 싶을까", "직업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넘고 나니, 만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사귄다? 헤어지면 퇴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덤이다. 초중고등학교 동창들 중에 만나서 사귄다? 헤어지면 동창회 못 나간다. 고향이 같아서 동창이 아닌 인맥까지 다 끊어진다. 이제는 디저트 카페나 공원에 가면 키 180cm 이상에 구릿빛 피부에 얼굴이 손바닥만 한 남자가 없나 두리번거린다.
'생활 속에서 얼굴 익혀가면서' 사귈 기회는 사실 대학생 때 말고 없다. 고등학생 때야 아직도 남학교, 여학교로 나뉘는 경우도 많고, 7교시 후 학원이나 야자 직행 코스로는 만날 시간이 안 나온다. 예대생 시절, 대놓고 CC도, 비밀 CC도, 동거하는 경우도 있었다. (욕하는 의도로 말하는 게 아니다. 동거하는 사람은 어느 학교든 있다.) 교양 같이 듣던 동지가 말해줘서 눈치챘다. 학교 앞 반지하 원룸의 형광등이 왜 새벽 한 시까지 켜져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남 얘기하기 좋아하는 애들도 많고, 심지어 모든 생활 반경과 동선을 알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은 어떤 특정 CC와 시간표가 한 학기 내내 겹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식사도 그들 뒷자리에 앉아서 숨 죽이고 먹었다. 카페에 가서 앉아 있었는데 만난 적도 있었다. 우리 말곤 손님이 없었다. 그들의 불편함을 내가 느꼈다.
또 데이트 비용도 절반으로 절약할 수 있다. 학교가 곧 데이트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사회인이 되면 하루 만날 때마다 십만 원 이상은 훌쩍 들어갈 것이다. 기념일이나 여행이라도 껴있는 주에는 바나나 같은 삼천 원 이하의 과일로 식사를 때워야 할 수도 있다. 친구와 놀러 갈 때는 모르는 사람과 같이 방을 쓰는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웃고 떠들고 잘 수 있지만, 연인과는 그렇게 못한다.
또 서른이 넘으면 성욕도, 식욕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엔 앉은자리에서 빵이나 라면 다섯 개는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젠 하나로 족한다. 데이트하면 온종일 먹으러 다니는 걸 체감하게 된다. 또 전에는 아이돌이나 배우를 보면 종일 생각났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 심드렁하다.
"너는 안 했으면서 왜 다른 사람한테는 하라고 하냐"라고 한다면, 그때 이걸 몰랐다. 대학생 때 밤새워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나도 보고, 십만 원 이하의 커플링도 해보고, 싸워서 울어도 보라. 최악의 경우라면 휴학이라는 선택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