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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공리셋 Jan 10. 2023

KT지사에 도착했다

어쩌다 소상공인

안내문자가 도착했다.


"소상공인 촬영 확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제품 콘셉트 촬영이 아닌, 모집 폼에 공지된 바와 같이 제품 누끼 샷인 점 꼭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누끼사진 촬영까지만 진행해 드립니다:)
✔ 촬영장소 :ㅇㅇㅇ KT지사 18F "


퇴사 후 1년 만에 어쩌다 소상공인이 되어보기로  했다.

어쩌다 소상공인 사진촬영지원에까지 당첨까지 되었으니 진짜 어쩌다였다.

당첨 문자를 받은 후 올레!!! 를 외치며 이른 아침 운전길에 나섰다.


오전 9시 촬영이 시작되는데 촬영장소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복잡한 동네이기도 했고, 나에게 운전으로는 초행길이라 일찍 도착해서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오전 7시부터 어젯밤 늦게까지 꼼꼼히 챙겨둔 촬영할 물건들을 부랴부랴 챙겨 집을 나섰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아침시간 운전길에 나서는데...

적지 않은 차들이 생소하긴 했지만 어색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밀리지 않는 시내도로를 쌩쌩 달려 도착해보니 촬영시간 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이었다.

일찍 도착하면 아무도 없을 테니 주차공간도 여유롭고 좋을 거라 예상했던 사실이 부끄럽게도 kt지사에는 이미 직원들의 차량이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직원들은 빠른 걸음으로 건물 안 엘리베이터를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놀란마음을 뒤로하고 나 또한 내가 이동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살펴보느라 그들 사이에 끼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1층 건물 출입구에 도착하니 출입증을 찍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들을 보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생기가 전해져 한참을 바라보며 서있기도 했다.

KT직원들 뿐만이 아니라, 연금공단, 그 외에도 각종 기업들이 입점해 있어 많은 직장인들이 이 건물로 출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층을 잠시 다녀온 사이 주차장은 이중주차로 이미 긴 줄이 지어져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부지런해'


퇴사 후 나는 월급대신 현금흐름을 창 줄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육아도 하고 나의 새로운 커리어를 개척해 보아야 하니 시간이 적게 들어가면서 내가 가진 목돈을 투자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선택하게 되었던 무인창업.


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 시작도 못했고, 나의 퇴직금은 왕창 물렸고, 변호사를 만나보면서 온갖 해결책을 강구해 보았지만 결론은 두 가지였다.

소송으로 가던지, 울며 겨자 먹기로 창업해 더 잘되게 만들던지.

후자를 선택하기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향하는 온갖 부정의 기운과 낮아진 자존감은 나에게 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작게나마 시도해볼 만했던 기회들을 대상이 없는 누군가에게 빼긴 것만 같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시간이 지나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가만히만 있다가는 정말 가마니가 될 것 같았다.

기력함이 꽤 오래갔다.

그렇게 내가 귀히 여기던 소중한 시간은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흐르고 있었다...


"너네는 젊어서 컴퓨터를 잘하니까, 여기 와서 이것 좀 볼래?"

평온한 주말 친정부모님 댁에 들렀을 때 아버지께서 우리 부부를 방으로 부르셨다.

그때가 아마도 내가 퇴사 후 6개월쯤 지났을 시점이었던 것 같다.

무인창업점포는 계약된 상태였으나 시비가 시작된 시점이었고, 부모님은 그 사실을 알턱이 없었다.


무언가 살펴보니 아버지가 30년이 넘게 소비자로 드시고 계시다 아버지를 믿고 따라 사드시던 지인들이 늘다 보니 얼마 전에는 사무실을 열어 건강에 대한 지식도 나누고, 그렇게 아버지가 용돈벌이로 하고 계시는 그 건강소금이 판매되고 있는 타인의 웹사이트였다.


임신했을 때에는 양수가 맑아진다며 먹으라고 가져다주시고, 변비가 심할 때는 더 짜게 해서 먹으라고 주시고, 마치 아버지께 소금은 만병통치약 같은 존재였다.

남편은 장인어른의 등살에 밀려 신혼 때부터 먹기 시작해 지금까지 아침마다 10년이 넘게 마시고 있고, 이제는 자진해서 마시고 있다.

마흔 중반까지 운동 한번 안 하고 음식 안 가려 먹는 남편을 보면 장인어른께 꽤나 설교를 들은 건지 본인의 건강보험 같은 존재 믿고 있는 듯 했다.

반면 솔직히 나는 선택적이었다. "먹고 있어요"하고 귀찮아서 안 먹고, 시부모님이 시켰으면 꾸준히 먹었을까?...나에게 소금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빠께 배워 깨우친 소금의 민간요법들로 알게 모르게 생활 속에 스며있는 특효약의 존재이긴 했다.


"다른게 아니고 내가 눈이 어두워서 이런걸 만들지는 못하겠고, 기존에 먹던 사람들도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00이 니는 시간이 이제 많아졌으니까 할수 있지 않겠나?"

"아, 간단할 거예요. 저는 못하지만... 찾아보고 도와드릴게요"

"아니 네가 해봐~"

"네?! 저한테 팔으라고요?!~아빠!(급하면 아버지가 아니라 아빠다) 제가 요즘 많이 바쁩니다요~"

"하하"


그냥 홈페이지 만들어 달라고 하기 미안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 알 수는 없었으나 마음은 쓰였다.

당시 내 코가 석자였기에 그렇게 외면한 시간이... 어느새 6개월이 더 흘렀다.


언제나 부모님은 자식의 뒤편에서 눈치 보고 움직이신다.

우리 부모님은 늘 그랬다.

(그래서 시집와서 자식들 앞에 주도적인 시부모님께 적응하기가 더 힘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쓰이던 마음이 어느새 훅하고 들어올 때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에 대한 마음씀씀이가 시간이 약처럼 작용해 나를 일어나게 해 주었을 때.

 이후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계시던 아버지께 긍정의 뜻을 내비침과 동시에...

나는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소상공인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제품 촬영장을 다녀온 후 나도 무언가 할 일이 생겼다는 그 자체가 설레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게 즐거웠다.

잊지 말자. 지금기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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