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블루오션을 향하여

쓰다 보면, 보이는 나만의 특별한 것들

by 안세정


처음이었다.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달린 건.

운전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속도위반에 걸리지 않기 위해, 또는 소요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는 길도 늘 내비게이션을 열었다.

그런데 문득, 아는 길이니 그냥 가보자하는 맘이 들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가 생각보다 길눈이 밝다는 것과 속도위반 카메라가 있기 훨씬 전부터 빨갛게 경고하는 안내음의 요란스러움을 떨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무심코 지나다가 속도를 오버해서 불필요한 벌금을 물게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 내비게이션을 열었던 이유가 컸었는데,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때에 따라 속도조절은 얼마든 가능하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운전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나를 감각할 수 있었다.

그동안 무턱대고 “나는 네비 없으면 운전 못해!”라고

단정지었던 내가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우리 생활 속 편리함의 역습

몇년 전, 집에 식기세척기를 들였다. 하루에 몇 번이나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일은 굉장히 비효율이란 생각이 들었고, 매번 식사 후가 되면 끼니를 차리고 난 피로에, 설거지까지 겹치니 그 에너지를 줄이고 싶었다.

식기세척기가 들어온 이후, 그릇들을 간단히 씻어서 넣으면 알아서 세척해주니 꽤나 편리해졌다. 이전에 그릇을 닦고, 헹구고, 말리고, 정리하고의 과정이, 식기세척기에 넣으면 건조까지 되어서 완료되니 마무리 정리만 하면 그만이다.

근데 참 신기한 일이 생겼다. 분명히 나는 설거지라는 집안일을 줄여서 더 수월하고 편해졌음에도 이전보다 편안하다는 감정이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돌이켜보니, 나는 항상 설거지를 하면서 설교 말씀이나 좋은 강의를 듣곤 했는데 이제 설거지를 하지 않게 되니, 그 시간이 삭제되어 버린 것이다. 내게 있어, 설거지는 단순히 그릇을 닦는 행위가 아닌 내 마음과 잡념들까지 씻어내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손수 설거지를 할 때보다, 시간이 많아졌지만 점차 마음의 찌꺼기는 쌓여갔다. 과연 편리함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 게 맞을까? 진정한 편리함이라는 건 무엇일까? 세상이 말하는 속도가 아닌, 나의 속도와 직감대로

바쁘게, 효율적인 것만을 찾아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다. 잠시 멈춰있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쉼조차도 어떤 효용이 되는가를 요리조리 따져보고 납득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는 삶을 살아간다. 스스로 길을 찾다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헤매기 보다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을 찾는 법을 습득하고 체화하듯이.... 기계에게 시키면 될 일을, 굳이 사람이 하면 아둔하고 어리석어보이는, 시간을 세이브해서 쓸모없는 일은 줄이는 게 당연하다는 메시지 속에 살아간다. 그렇다면 진짜 쓸모있는 일은 무엇이며, 쓸모없는 일은 무엇일까?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지 않고도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늘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다가, 오로지 나의 힘으로 무사히 잘 도착했다. 그 사실자체로 왠지 모를 충만함이 차 올랐다. 나만의 속도로 달릴 수 있었다는 것, 나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내 존재만으로 충분할 수 있구나.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나의 존재를 느끼고 감각하는 기쁨으로

불과 2~3년만에 누구나 ai를 이용해서

자신의 문제나 직업, 경력, 지식 등의 전반적인 과정을 해결해나가곤 한다. 그야말로 ai의 발달로 인해, 이제 인간은 더이상 애써 일하지 않아도, 힘들게 머리를 싸매지 않아도 되는 일상으로 초대받고 있는 셈이다. ai툴을 잘 사용하면, 평소하던 일의 속도를 몇배 또는 몇십배나 줄이면서 더 탁월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나역시 아이디어를 도출하거나, 엉킨 생각들을 정리할 때 챗지피티나 재미나이를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의식적으로 경계하고 있는 중이다. 왜냐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존도가 점점 커진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깊이 고민하고, 그 고민에 대한 해석과 해결을 방안을 찾아나가기 보다 ai가 바로 정리해주는 것은 순간적으로 매우 빠르고 효과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의 어두움이 분명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점점 그 빠른 판단에 익숙해지고, 내가 나의 상황을 깊이 인지하고 해결해가기 보다는 ai에게 모든 판단을 맡겨버리게 되는 역설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심각성은, 나 자신의 직감과 사유의 힘, 더듬더듬 찾아가며 겪게 될 시행착오의 교훈, 과정 과정에서 얻게 될 경험과 능력이 사장되어버린다. 물론, 굳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굳이 많은 경험이나 시행착오를 할 필요없기 위해 ai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 안에 빛과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빠른 판단과 해답으로 인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힘을 점점 잃게 된다.


이론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다만 전문가들조차 그 경계와 기준의 심각성을 논하고 있으니, 한번쯤 멈춰 생각해보는 건 필요하지 않을까?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이 아닌, 노트를 펼쳐서 지금 나의 고민과 질문을 던져보았다.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아도, 그 고민과 질문이 나를 더 깊은 자아탐구, 사유의 길로 이끈다. 혹자는, 요즘 세상에 누가 노트를 펴고, 손으로 글씨를 쓰냐며 얼마나 노후한 발상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머릿속의 생각을 손으로 옮겨적고, 다시 나의 필체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을, 그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행위자체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단지 쓰는 것만으로 내가 살아있다는 감각을 얻을 수 있다.

또 때때로 뜻밖에 명문장이 나도 모르게 나오면

얼마나 기분이 좋고 신이 나는지 모른다.


나만의 특별함과 잠재력을 발굴, 블루오션으로


지난 주말에 오랜만에 나의 지난 모닝페이지 노트를

들춰보다가 엄청 감동이 되는 글을 발견했다.


지금 나에게 주신 이 고난은,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내가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무의식으로 쓰는 글들이라 그랬던 것 같다.

‘우와! 졸린 눈을 비비고 비몽사몽 중에, 이토록 멋진 문장을 썼다고?’ 스스로도 놀라서 오래 멈춰서 몇번이고 읽었다. [고후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2Co 1:5, NIV] For just as we share abundantly in the sufferings of Christ, so also our comfort abounds through Christ.

나는 기독교인이다.

기독교인들에게 고난은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창조주와 깊이 교감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쏟아낼 수 있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동행의 시간이기 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때 가질 수 있는 것이 영성인데,

이 영성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궁극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되는 힘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꼭 필요한 도구가 글쓰기다. 무작정 마음과 생각을 적으면 된다. 쓰면서, 무의식 속 나를 바라보고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때로 겨우 가라앉힌 내면을 휘젓느라 힘들지만, 그 지리한 분투 속에 흩어졌던 것들이 하나로 모아지고, 나만의 잠재력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 잠재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힘이 된다. 그야말로, 나만의 특별한 ‘빛’과 ‘결’이 되어, 그 어디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브랜드가 된다. 경쟁이 필요없는 블루오션 위에서, 나만의 길로써, 나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과로 증명되고 각인된다. 그러니 쓰다 보면, 나만의 길이 보이기에

결국 살게 된다.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only one으로!


드로잉 일기_비가 와도, 눈이 와도 자기만의 모습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처럼....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