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버티게 하는 내면의 기술
“끝까지 버틴 놈이 이긴다!”
성공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
어떤 이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어떤 이는 좋은 환경이 수반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결정적인 기회를 만나야 한다,
말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사람들은 꼭 이렇게 말한다.
“성공은 버틴 자에게 온다.” 라고.
그러나,
‘버티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 들어있는
피, 땀, 눈물, 인내를
어찌 다 형용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잘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은 성공의 원인과 결과를
흔히 의지나 근성의 문제라고만 덮어둔다.
하지만, 나의 경험상 버티기에 있어
가장 독보적인 기술이 바로 ‘글쓰기’이다.
버티기의 시작은, ‘내면 정렬’로부터
흔들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더 강해지려 하고, 더 빨리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중심을 지켜주지 못한다.
흔들릴수록 중요한 것은
내면을 정렬하는 일,
그리고 그 정렬을 가장 정확하게 돕는 것이
바로 ‘기록’이다.
사람은 쓰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밖으로 끌어내고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쓰는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되고,
흩어진 감정과 생각을 잘 다듬을 수 있으니 말이다.
기록하는 사람은 흔들려도 중심이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 빅터프랭클
내가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 때마다,
자주 떠올리는 한 사람이 있다.
유태인 말살정책으로,
죽음의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인간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떻게 마지막 존엄을 지켜내는지를
자신의 생명을 걸고 기록한 사람이었다.
죽어가는 이들의 표정,
살기 위해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들의 떨림,
오로지 적자생존의 원리로만 구동하는 일촉즉발의
그 모든 순간을 그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끝까지 붙잡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죽고,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와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까지 다 빼앗겼지만
단 한 가지는 빼앗기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을 해석하는 힘’
매일 걸레짝처럼 치워지는
동료들의 시체 무더기를 봐야 하는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그는 극한 고통을 자신만의 ‘언어’로 조직했고
지옥 같은 하루를 ‘의미’라는 틀 안에 넣기를 멈추지 않았다.
훗날, 그의 기록들은 <죽음의 수용소>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어
지금까지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삶을 회복케 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사실 그보다 먼저 그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원동력이자 구원의 창구였던 것이다.
프랭클은 말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 의미는 생각만으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과한 기록으로,
쓰는 동안 상처가 언어가 되고,
그 언어가 방향을 만들고,방향이 버팀의 힘이 된다.
그는 글쓰기 덕분에,
버텼고
또 살아남았다.
쓰는 사람은 흔들려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불안이 밀려올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이미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 앞에서
몸과 마음이 동시에 무너질 때—
그때 나는 지금 느끼는
그대로를 글로 옮겨 적는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좋지 않은 대로,
아침이 달갑지 않으면 달갑지 않은 그 상태로,
가라앉은 마음이라면 그냥 그런대로,
한 줄 문장은,
그다음 문장을 불러오고
그다음 문장은 그 다다음 문장을 불러오면서,
그렇게 노트가 채워진다.
흐트러진 내면이 하나씩 자리를 찾아간다.
불안은 언어가 되는 순간
더 이상 나를 압도할 수 없게 되고
무너질 것 같던 감정은
의미의 구조 속에서 다시 호흡을 찾는다.
고통을 적는다고
당장 고통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고통의 형태가 분명해져
나는 그 고통보다 조금 더 높은 시선으로
나의 현재와 상태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존재하게 된다.
조망할 수 있다는 건,
그 고통과 상황으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나와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건,
나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좀 더 컨트롤할 수 있는
‘버티기’ 가능의 상태로 이동되었음을 의미한다.
굳건하지 않아도, 그저 ‘버틸 수 있는 사람’으로
버틴다는 것은
그저 힘을 주고 버티는 근육 싸움이 아니다.
버틴다는 것은
흔들림 속에서도 나라는 축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 축을 다시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쓰면 생각이 정렬되고,
정렬되면 방향이 생기고,
방향이 생기면 다시 걸어갈 힘이 생긴다.
‘글쓰기’는 감정을 다스리는 기술이자
존재를 다루는 기술이며
버티기의 가장 탁월한 연장이다.
쓰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고,
더 즉각적인 해답을 요구한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가장 깊이 있는 사람이다.
깊이는 사유에서 나오고,
사유는 기록에서 나오며,
기록은 결국 우리를 버티게 만든다.
세상은 언제나
누가 먼저 가는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서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나는 안다.
쓰는 사람은 흔들려도
다시 선다는 것을.
쓰는 사람은 넘어져도
방향을 잃지 않음을.
쓰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길을 끝까지 간다는 사실을.
고린도후서 4:16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쓰는 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서,
겉사람이 낡아져도 생기를 잃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운 성공을 이룰 이들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