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을 다음 단계로 이끄는 글쓰기의 힘
최근 나는 꽤 많은 흔들림 속에 있다.
어떤 날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어떤 날은 방향을 잃은 것만 같고,
또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고요하게 비어 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흔들림 속에서도 내 중심은 언제나 그대로라는 것이다.
삶이 크게 요동칠 때마다
나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이 흔들림은 무너짐의 징조일까? 아니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는 신의 부르심일까?”
언제나 답은 후자였고, 지금도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다
며칠 전 집 안의 방 배치를 조금 바꿨다.
큰아이가 쓰던 넓은 방을 둘째와 막내가 함께 사용하도록 하고,
큰아이는 조금 더 작은 방으로 옮겼다.
작은 방에서 혼자 지내던 둘째가
넓은 공간에서 동생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사춘기인 중3 딸이 초5인 여동생과 부딪히지는 않을까 염려도 되었는데,
오히려 동생과 지내며 자연스럽게 폰을 내려놓는 시간이 늘어났고,
막내는 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더 환하게 웃었다.
정리에 무심했던 큰아이도
작은 방을 자신의 결로 정성스레 꾸미며
오히려 만족스러워했다.
같은 아이, 같은 집, 같은 하루인데
방배치 하나만으로 흐름이 달라졌다.
꽤나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삶을 바꾸는 건 환경이 아니라 재배치,
상황이 아니라 구조,
조건이 아니라 자리의 이동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며
또 하나의 진실이 떠올랐다.
흔들림은 무너짐이 아니라,
더 적절한 자리로 옮겨가라는 신호일뿐이라는 것을.
삶의 재배치는 ‘위기’가 아니라 ‘초대’였다.
흐름이 멈춘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흐름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재배치의 정확한 중심에 서 있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 작은 문장 하나
지나온 삶 속에서 겪은 고난과 상흔,
그리고 그것을 감내하느라 미처 몰랐던 마음의 무게가
한 번에 몰려와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큰 결심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그저 단 한 줄만 쓴다.
‘오늘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한다.‘
이 문장만으로
나는 나를 비난하지 않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인정을 위한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저 존재 자체로서의 나를
온전히 인정해 주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이 한 줄을 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흔들림 속에 떠밀리는 존재가 아니라
‘흔들림을 관찰하는 사람’이 된다.
관찰자는 무너지지 않는다.
흔들림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이미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흔들려도 중심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흔들림은 다음 단계로 이동하기 위한 ‘예고편’
삶이 다시 정렬되기 전에는,
반드시 혼란의 시간이 온다.
아이들이 방을 옮기기 위해
짐을 모두 꺼내기 시작했을 때,
순식간에 거실은 크고 작은 물건들로 가득 찼다.
“헉, 이걸 언제 다 정리해…?”
눈앞에 즐비한 물건들로 압도되어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기도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재배치란 결국 한 번은 뒤죽박죽 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의 내면도 같다.
움직이기 전에는 반드시 흔들리고 얽히고, 때로는 무너지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얽힘은 실패가 아니라 내면의 구조가 업데이트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늘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흔들리는 나를 이제 두려워하지 않는다.
흔들린다는 건 멈춰 있지 않다는 뜻이고,
더 깊어지고 있다는 뜻이며,
새로운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물론, 늘 배우고 실천하며 나아가는 성향 때문에
이렇게 멈춰 있어도 되는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시간이야말로
훗날 나에게 가장 깊고 진한 여정으로 남아,
아파하고 흔들리는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경청과 도움의 말들을 해줄 수 있는
소중한 재료가 된다는 걸.
글쓰기는 흔들림을 ‘나만의 중심’으로 데려오는 기술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나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모니터 앞에 앉아
어디에도 닿지 않는 마음을
나만의 메모장에 쏟아내고 있었다.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길 위에서 우뚝 서 있는 것만 같은데,
나만 가만히 멈춰 있는 듯한 일상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눈시울을 적시며 좌절했다.
엄마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 사이에서 길을 찾지 못해
막막하고 우울했던 날들.
그때 나는 친한 작가 언니와 하던
글쓰기 프로젝트에서 ‘내가 바라는 삶’을
조심스레 써 내려갔다.
쓰기는 했지만 의심했고,
그럼에도 무척 간절했다.
그런데 몇 년 뒤, 우연히 그 글을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작가가 되었고,
아이들에게 글과 책으로 멘토링을 하는 삶을 살고 있었고,
강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서 있게 되었다.
흔들릴 때 사람들은
더 붙잡고,
더 힘을 주고,
더 애를 쓰려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중심은 더 멀어진다.
글쓰기는 조용히 우리를 나만의 중심으로 이끈다.
붙잡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그저 지금의 나를 기록하는 일—
기록은 당장 흔들림을 멈추게 하지 못해도,
흔들림 속에서 다시 설 자리를 만들어준다.
그 흔들림들을 적어두면
그 흔들림은 두려움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이 된다.
방향이 된다.
나만의 역사가.....
중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이 복잡하게 얽히고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어질 때
나는 무작정 걷는다.
걸을 때마다 느낀다.
내 마음이 흔들려도
어딘가에서 계속 나를 끌어올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시편 61편 2절의 기도처럼—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나를 이보다 더 높은 반석으로 인도하소서.”
흔들리는 나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 힘.
그것이 글쓰기였고,
기도였고,
내면의 조용한 대화였다.
나는 흔들렸지만
내 중심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더 드높은 자리로의 이동 중이었다.
흔들림은 다음 단계를 향한 예고다
흔들리는 동안 쓰는 글만큼이나
사람을 단단하게 세우는 글도 없다.
흔들림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더 깊은 자리로 옮기기 위한 하나님의 예고이며,
내면의 구조가 새롭게 조정되는 징후다.
재배치가 오고 있다.
흐름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중심에 서 있다.
흔들려도 괜찮다.
중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삶은,
마침내 특별한 순간을,
평범한 듯 했던 일상에
놀라운 기적을 데려온다.
방 정리가 마무리되던 밤,
온 집안을 뒤흔들던 혼란이 가라앉자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아까 거실에 침대랑 물건들이 잔뜩 쌓였을 때는
‘이걸 언제 다 하지?’ 싶었는데
하나하나 옮기고 정리하고 나니까
너무 뿌듯하고… 행복해!”
그 말을 듣는 순간 선명해졌다.
흔들림은 끝이 아니라,
새 구조가 태어나는 바로 그 직전의 장면이라는 것을.
쓰다보면,
살게 된다.
그리고
쓰는 사람에게
흔들림은 반드시 다음 단계를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