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단단히 잠가두고 버텨온 날들의 기록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진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

by 안세정


사랑이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때로는 떠날 줄 아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떠남’은

궁극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붙잡는 힘’이라고 말한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더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포기하지 않는 쪽이 더 진심이라고.

나 역시 그런 ‘사랑의 책임’ 때문에

나를 조금씩 잃어가던 오랜 시간 끝에서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그저 내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오래,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게,

스스로를 지워버렸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오래 버텨온 사람은, 자기 마음을 가장 늦게 발견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참고 버티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운 아이였다.

장녀였고,

조용히 주변을 살피는 성향이었고,

감정보다 책임이 먼저였고,

울음보다 해결이 먼저였다.

누군가 흔들리면 대신 중심을 잡아주고,

누군가 지치면 기댈 자리가 되어주고,

누군가 무너지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내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멘토로 살면서도

그 버티는 방식은 멈춘 적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버텨온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래 버틴 사람일수록,

마치 그것이 기본값이 되어버려

자기 마음의 신호를 가장 늦게 알아차린다는 것을.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네가 조금 더 참아. 그 사람이 더 힘들잖아.”

“엄마니까, 아내니까, 장녀니까… 그 정도는 해야지.”

나는 그 말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느 순간,

내 마음속 작은 목소리들은

늘 뒤로 밀려나 조용히 웅크려 있었다.

버티는 데 익숙해지는 동안

나는 나를 미뤄두는 데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지워진 자리에는

어느 순간

텅 빈 피로와 오래된 슬픔만 남아 있었다.


숨쉬기조차 벅찬 날들 속에서

삶이 너무 무거워져

숨조차 쉬기 벅찬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자 내 안에서 이런 문장이 흘러나왔다.

“나는 언제까지 버티기만 하며 살아야 하지?”

그때 깨달았다.


이전의 방식을 떠나는 건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때로는 나를 버티게만 했던 자리에서

‘나 자신에게로’ 걸어 나오는 것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사람들로부터 한 발 물러나야 했고,

전화를 거의 받을 수 없었고,

카톡의 작은 노란 불빛조차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조차

숨이 막혔다.


타인에 대한 ‘침묵’과

나 자신에 대한 ‘과묵’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더더 내 안으로 침잠하고 있었다.

더 깊은 어둠으로,

더 깊은 막막함으로,

더 깊은 고요함으로.

‘멈춤’이 보내는 신호

며칠 동안 나는

해야 할 일을 정리하지 못했고,

익숙하던 루틴조차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나를 받아들였다.

‘내 인생에서 한번쯤은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늘 빼곡하게 채워진 시간표를 내려놓았고,

일과 마음을 배분하던 습관을 잠시 접어두었다.

과밀했던 삶의 효용성 대신

느슨하고 헐렁한 일상을,

그저 내 몸이 보내는 신호대로 움직였다.

살아 남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감각으로

아침을 버티고,

낮을 견디고,

숨을 고르며 저녁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오래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 놓아버림의 힘의 지혜를,

마치 ‘찬스’처럼 써 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기록은, 어떤 상황도 ‘생생히’ 증명한다

무엇 하나 까닥하기 힘든 나날들 속에,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만들지 않고

그저 감각을 적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햇살이 따뜻한데, 몸은 따라주지 않는다.”

“조용한데 머릿속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그러다 문득,

내 안에서 질문 하나가 슬며시 올라왔다.

“지금은… 나에게 어떤 시간일까?”

그리고 아주 약한 숨처럼 이어진 또 다른 질문.

“새로운 길이… 열리겠지?”

그 질문을 내려놓는 순간

내 곁에 환한 햇살이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조용한 빛.


사랑의 진짜 모양은, ‘나를 지키는 힘’이다

“선생님, 지금 제가 사람들 눈에는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나의 내면은 누구보다 단단히 자라

나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고 믿게 된 것도

모두 선생님 덕분이에요.”

오랜만에 건네온 제자의 안부 메시지에

요즘 번아웃이 왔다고 고백했더니

보내온 응원의 말이었다.

‘그래, 내가 준 사랑이 헛되지 않았구나…’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누군가의 삶에 힘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랑의 출발점은 ‘나’라는 것을.

나를 지키지 못한 사랑은

결국 누구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한 발 물러서는 일,

말하지 않는 일,

침묵 속에서 나를 재정렬하는 일은

도망이 아니라

이전과 다른 ‘더 깊어진’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나를 바라보는 중이다

혹시 당신도

오랫동안 버티느라 지쳐 있는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무게를 안고

하루를 겨우 살아내고 있는가?

멈추고,

숨 쉬고,

조용히 머물러야


비로소 우리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 된다.

지금 나는

늘 함께 했지만,

한번도 제대로 봐준 적 없었던

나를 묵묵히 바라보는 중이다.

그리고 이 과정 과정은

나를 이전보다 더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줄 것이다.

우리가 삶에서 이루고 싶은 궁극의 목표는,

결국 ‘사랑’이니까.

그러고보면,

난 지금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가치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인 게 아닐까?

쓰다보면,

살아진다.

그리고

나를 잃지 않는 사랑은

그 기록 속에 살아 숨쉰다.


아무 말 못하고 버티던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보는 시간....“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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