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살아나는 것들에 대하여
어느 순간부터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이 오래 머물곤 한다.
깊은 대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호흡이 편안해지는 순간,
소음이 가득한 하루 속에
내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태도 같은 것들.
이러한 것들이야 말로,
나를 더 나답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감각들이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더 오래 멈춰 돌이켜보게 한다.
‘기다림’과 ‘사랑’의 감각을 키우는 부엌
차가운 은색 냄비에 김치와
돼지목살을 넣고
자글자글 볶기 시작했다.
이내 온기 가득해진 냄비에 물을 붓자,
덜덜거리며 끓어오른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라는
흥얼거림이 절로 나왔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달려온 막내가
“우와, 김치찌개다!” 라며 침을 삼켰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벌써 마음이 충만해져
곧 차려질 식탁 위의 풍경이 기대됐다.
바쁠 때는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내 손으로 만들고
가족과 함께 나눌 식탁을 기대하는 마음은
어떤 것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다.
돈은 음식을 사줄 수는 있어도
이 기대 어린 기다림과
정성 어린 사랑을 사주지 못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과정의 시간
열아홉 살이 된 큰 아이가
작년 중반쯤부터
온라인 사업을 해보겠다며 도전하고 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 드디어
첫 상품을 온라인 판매 플랫폼에 등록했다.
“엄마, 상세페이지 만들고 이틀 만에 올린 거야. 엄청 빨리 했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준아, 너는 이틀 만에 올린 게 아니야.
반년 만에 올린 거지.사업자 낸 지 반년이 지났잖아.”
“그런가?”
아이는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내 말에 수긍했다.
사업자만 내면 금세 잘될 거라 들떠 있던 시간들,
‘잘 된다’는 아이템을 찾겠다며
하루 종일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했던 날들,
그럴싸해 보이는 고가의 강의를
자신이 힘들여 모은 용돈으로 결제하고 열심히 들었지만,
결국 아니라는 걸 깨달으며 눈물을 머금으며
마른침을 삼켜야 했던 시행착오들까지.
그 모든 시간을 지나면서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준아, 너는 지금 돈으로는 살 수 없는아주 소중한 과정을 경험하고 있어.나중에 네가 잘 되었을 때,그 땐 그랬지하며 그리워하고 웃을 날들의 기록이라는 걸 절대 잊지 마.”나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모습이 대견하고 감사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지만,
성공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 안에서의 시행착오와 선택,
고민과 망설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자기 실력에 대한
한탄과의 싸움은 결코 작지 않다.
쓰다보면, ‘삶의 감각’들이 살아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전도서 3장 1절)
나는 이 말씀을 믿는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묵묵히 성실하게 걷는 자들에게
그 어느 때도 가치없는 순간은 없음을.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때가 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순간을
감각할 수 있는 힘을
글을 쓰며 다듬어간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문장으로 옮기다 보면
지금의 나 자신을 수용할수 있는
마음의 품이 점점 넉넉해진다.
이 감각들은
쓰다보면
조금씩 살아난다.
살아난 감각들은,
나다운 삶의 길로
나를 인도한다.
쓰다보면,
살아나고,
그래서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