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라는 기술, ‘침묵’이라는 무기
세상과 나의 주파수를 다시 맞추는 데,
두 달이라는 고요한 (번아웃)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내 마음의 리듬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조용하고도 강력히 자리하게 됐다.
멈춤이 허락되지 않던 시간들
나는 오래도록 멈추지 않고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해야 할 말을 고르고,
해야 할 역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한 박자 빠르게 움직였다.
멈춘다는 건
뒤처지는 일 같았고,
침묵은 무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웬만한 흔들림은
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버텼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러다 어느 순간,
더는 속도를 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몸이 먼저 멈췄고,
마음이 뒤따라 멈췄다.
전화도, 메시지도,
누군가의 감정에 반응하는 일조차
숨이 막히듯 버거웠다.
설명조차 할 힘이 없었다.
고요 속에서도 멈추지 않은 기록
그 고요 속에서도 나는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잘 쓰려는 글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내 상태를 알고 싶어서
파고드는 깊은 수행이자 기도였다.
쓰는 동안
흩어졌던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잠함이 힘이 되는 자리
[이사야 30:15, 새 번역 성경]
"너희는 회개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이며,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 말씀은 나의 멈춤과 고요가
연약함이 아니라 새로운 힘의 전환일 수 있다는 걸 조용히 일깨워주었다.
그제야 알았다. 고요는 나를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침묵이라는 가장 단단한 무기
침묵은 패배가 아니었다.
도망도 아니었다.
침묵은
불필요한 반응을 걷어내고
나에게 꼭 필요한 감각만 남기는 일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내 안의 소리를
더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멈춘 뒤에야 보이는 삶의 방향
멈추고 나서야
제대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무엇에 과하게 반응해 왔는지,
어디에서 나를 소진시켜 왔는지,
어떤 리듬이 나를 살리는지.
속도가 아니라
리듬이 삶을 지탱한다는 사실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쓰다 보면, 살아진다
나에게 글쓰기는
멈춘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
가장 조용한 방법이었다.
쓰는 동안
나는 나를 밀어붙이지 않았고, 다시 살필 수 있게 되었다.
꾹꾹 눌러쓰거나
급하게 마음과 생각을 기록한,
어떠한 판단과 요구를 구하지 않는 나의 글들.
그 글자들 사이에 자간과 행간조차
나를 숨 쉬게 했고,
다시 소생할 수 있도록
고요한 응원을 보내주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고요는 기술이 되고,
침묵은 무기가 되며,
기록은 삶을 다시 흐르게 한다는 것을.
고요가 기술이 되고
침묵이 무기기 되려면
나를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쓰다 보면,
정말로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