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광야도 길이 된다

새로운 판을 짜는 중입니다.

by 안세정


나는 요즘, 광야에 서 있는 기분을 자주 느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분명히 애쓰고 있는데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시간.

빛은 분명히 떠 있는데, 내 삶의 지형은 아직 비어 있는 들판처럼 보이는 상태.


언제나처럼 눈을 뜨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쓰고, 최소한의 일과 그 속에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는 하루하루 속에서 내 안에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이 길이 맞을까. 지금 이 속도로 괜찮을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헛된 곳은 아닐까.


광야는 바로 이런 질문들이 쏟아지고, 조용히 쌓여가는 자리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변함없이 해는 뜨고 빛을 보내온다....

광야의 특징은 단순하다.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든다.

홀로 서 있는 듯 끝없이 황량해지는 마음과 어디서 무엇이 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는 곳이 광야이다. 이때의 불안은 사람을 쉽게 조급하게 한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고 싶어지게 하고, 확신을 외부로부터 찾고 싶어진다. 속도를 높여 하루 속히 광야를 벗어나고 싶기도 하다.

나는 이럴 때 의식적으로 더욱 노트와 펜을 가까이 둔다. 현재의 내 마음 상태와 무의식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쏟아내고 기도하듯 글을 쓴다. 그리고 쓰다 보면 알게 된다. 광야는 벗어나야 할 곳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구간이라는 것을. 오히려 그 시간은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세울 수 있는 기회임을.

물론, 내 마음의 말들을 글로 다시 만나는 것일 뿐이니 크게 감흥이 없을 때도 있지만 뜻밖에 툭 던져지는 말들로 인해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내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글들과 지금 내 마음의 질문들을 담아서 쓰다 보면, 나의 무의식에서 길어 올리는 답들에 무릎을 치게 된다.

사실, 노트 위에 쏟아낸 그 문장들은 거창하지 않다. 단지 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주고, 그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내 마음과 생각뿐임을 인지하게 도와주고 결국 내가 가져야 ‘믿음’을 선택하게 이끈다.

나를 사랑하고 언제나 함께 하신 내가 믿는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끝까지 붙잡고 사는 것. 결국, 내가 쓴 글들은 나를 더 안전하고 단단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이정표가 된다. 그리고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주어진 인생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포기하지 않고 있는 나를.

때로는 그런 나 자신에 대해 경외감이 들기도 하고, 참 대견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글을 쓰며, 내가 현재 서 있는 광야가 새로운 지도로 인식되는 경험을 한다. 그저 막막한 터널 같았던 시간이 알고 보니 산을 뚫고 지나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이런 깨달음 속에서 두려움은 점점 사그라들고, 지금 이 길 위에서 내가 진짜 집중할 것이 무엇이고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드로잉 일기_알 수 없는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나만의 삶의 결이 만들어진다.


나는 자주, 성경 속 요셉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이방땅인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고, 그곳에서 또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던 그.

그는 억울했고, 잊혀졌고, 설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낭비가 아니었다. 말할 수 없이 막막했던, 끝이 없어 보였던 그의 광야의 시간은 그를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훗날, 그가 그의 민족을 살릴 수 있는 애굽의 국무총리 자리에 서게 해 준다.


나 역시 지난 삶 가운데,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을 지나며 얼핏 알게 된 게 있다. 광야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판이 짜지는 시간, 이전과 다른 구조가 만들어지는 자리라는 것. 그리고 그 막막한 기다림을 견뎌본 사람만이 다른 이의 기다림을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 비어 있는 들판 위에서 조용히 한 줄을 쓴다. 쓰다 보면, 광야도 결국 길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Dt 8:2, NIV] Remember how the LORD your God led you all the way in the wilderness these forty years, to humble and test you in order to know what was in your heart, whether or not you would keep his commands.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