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보면 감정이 나를 지키게 된다

감정을 다루는 사람은 무너지지 않는다.

by 안세정

열여섯 살이 된 둘째 딸에게 물었다.

나와 함께 오래 책을 읽고, 질문을 나누고,

글을 써온 아이다.


“너는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뭐가 제일 좋았어?”

잠시 생각하던 아이가 말했다.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거.”

나는 아이의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글을 쓴다는 건 곧 나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 대해,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고, 크고 작은 일들 속에서 나만의 시선과 구조로 바꾸는 시간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 아이에게 남은 건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된 것‘ 이었다.


새삼 알게 되었다. 중심은 감정을 억누른 결과가 아니라, 감정을 정확히 다룰 수 있을 때 세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조심한다. 두렵다고 말하면 약해 보일까 봐, 서운하다고 표현하면 관계가 흔들릴까 봐 한 번 더 삼키고 넘어간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온 시간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감정을 삼키는 사람은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무감각해질 뿐이란 걸.


돌아보니, 나 역시 글을 쓰며 불필요한 감정을 해소하기 이전에 감정을 ‘관찰’하는 법을 배웠다. 마음이 그대로 노트 위에 올라오고, 그 문장을 다시 읽는 순간 감정은 나를 휘두르는 힘이 아니라 내가 다룰 수 있는 언어가 된다. 아, 내가 이랬구나. 아, 그래서 이 마음이었구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히브리서 10:22


글을 쓴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내 상태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다시 선택하는 일이다. 나는 아이들이 워크북에 자기 마음을 채워갈수록 눈빛이 또렷해지는 순간들과 수강생들이 자신의 상태를 말과 글로 표현할 때 흐릿했던 시선이 명료해지는 순간을 무수히 봐왔다.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잃지 않는다. 관계에서도, 위기에서도, 실패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감정을 글로 쓰다 보면 감정은 나를 흔드는 변수가 아니라 도리어 나를 지키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쓰다 보면 감정은 폭발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쓰다 보면 나는 나를 더 정확히 알게 되고, 알게 된 만큼 덜 흔들린다.


쓰다 보면, 우리는 살게 된다.


드로잉 일기_감정의 터널을 지나, 빛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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