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기록하면 판이 바뀐다.
얼마 전, 우연히 한 인터뷰 방송에서 우리나라 최초 여성 단독 앵커였던 김주하 아나운서가 최근에 자신이 쓴 책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늘 당당하고 멋진 그녀에게는 사기결혼이라는 뜻밖에 상처와 아픔이 있었고, 이번 책에서 그 이야기를 쓸 때는 너무 힘들었다며 잠시 숨을 고르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다 쓰고 나니, 그 상처에서 나올 수 있었어요.”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상처를 겪은 이들 중에 그 엄청난 일들을 글로 쓰면서 비로소 그 상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상처가 저절로 옅어지거나 해결된 건 아니다. 그저 끝까지 써냈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때때로 그런 아픔의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의 과정을 쓰는 동안은 솔직히 맘이 편치 않다. 심지어 겨우 누르며 이미 지나간 일인데 문장으로 옮기면 다시 살아나니 말이다.
억울함도, 서운함도, 그때는 괜찮은 척 넘겼던 감정도 적는 순간 또렷해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끝까지 쓰고 나면 그 일이 나를 억세게 붙잡지 않는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내 자리가 달라진다. 고통 한가운데에서 어찌할 바 몰라하던 자리에서 고통을 묵묵히 바라보는 자리로.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쓰지 않으면 불행은 억눌린 감정으로, 부끄러움으로, 열등감으로 남는다. 하지만, 불행은 글로 쓰면 하나의 사건이 된다. 쓰지 않으면 상처는 나를 설명하는 말이 되지만 쓰다 보면 상처는 나의 해석이 담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나 또한 아프고, 흔들리는 순간들이 무수하다. 때때로 휘청이기도 하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기록해 왔기 때문이다. 기록은 아픈 일을 미화하는 게 아니다. 그 일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다.
성경 속 시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8)
나의 눈물이 주님의 병에 담아지고 기록된다.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큰 위로를 받는다. 내가 흘린 눈물도, 아무도 모르게 고통 속에 지내온 밤들도, 그냥 휘발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의 눈으로 나의 삶이 기록되고 있구나....
쓰는 순간, 나는 억울한 피해자의 자리에서 내 삶을 주도적으로 세우고 붙잡는 자리로 천천히 옮겨 선다. 불행을 쓰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고통을 기록하면 판이 바뀐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쓸 수 있는 나는 쓰면서 살아간다.
쓰다 보면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