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다시 미래를 여는 순간
“현실이 너무 버거워서 글을 쓰고 꿈을 그리면서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게 진짜 하나씩 현실이 되어가더라고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책도 내게 되었잖아요.”
최근 신간 도서를 들고 나온
한 젊은 여성 사업가의 말이었다.
어린 시절 조부모 밑에서 자라며
가난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고,
일찍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많은 도전을 해왔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지나
지금은 자신의 사업을 일군 젊은 사업가가 되었다.
우연히 그 인터뷰를 보다가
쓰다 보니 꿈을 이루게 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유난히 반가웠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런 삶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세정아, 일기만 잘 써라.”
엄마의 형제 육 남매 중
가장 똑똑하고 공부를 잘했던
나보다 열두 살 많은 둘째 삼촌은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던
큰 누나인 우리 엄마를 응원하기 위해
자주 우리 집에 왔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매형과 누나를 보면서도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살림을
삼촌은 아마 짐작했을 것이다.
어린 조카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
혹시라도 잘못될까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가톨릭 신부님이 된 삼촌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빵빠레를 사 왔고,
책 몇 권을 사 왔고,
우리가 쉽게 받아보지 못할 두둑한 용돈을
손에 쥐여 주고 갔다.
그리고 늘 강조한 것이
일기 쓰기였다.
다른 건 다 하지 않아도 좋으니
매일 일기만 쓰거라.
처음에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다.
왜 그렇게까지 일기를 강조했는지.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비로소 알게 되었다.
어떤 희망도,
어떤 방법도 잘 보이지 않던 우리의 삶에서
그래도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작은 도구가
일기 쓰기였다는 것을.
꿈을 꾸게 하는 유일한 상상의 도구
하루를 돌아보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미래를 한 번쯤 그려보게 하는....
삼촌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어쩌면 그것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깨친 직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일기를 써왔다.
딱딱한 책상 위에 작은 노트를
내 몸의 중앙에 놓고
라디오를 들으며
매일 일기를 썼다.
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날,
억울해서 엉엉 울고 싶었던 날,
엄마 아빠와 처음으로 노래방에 갔던 날,
어린 동생과 전철을 타고 부모님이 일하시는
먼 곳까지 무사히 찾아가
네 식구가 행복하게 외식을 했던 어느 날.
나의 일기장에는
울고 웃었던
평범하거나 특별한 날들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생각을 붙잡기 위해 쓰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 자신에게 말을 걸듯 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미래를 그리듯 쓰기도 했다.
어쩌면 그때 나의 일기는
살아가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었을지 모른다.
현실이 너무 막막해서
나의 글로라도 밝은 미래를 써야 했던 시간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인터뷰에서 본 그녀와 나는
어쩐지 많이 닮아 있었다.
삶이 단단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서,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오늘을 버티기 위해서.
그래서 나는
쓰다 보면 살게 된다고 믿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또 하나의 변화를 발견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고 있었다는 걸.
버티기 위해 시작했던 글이
어느 순간
미래를 그리는 시간이 되어 있었음을.
[히11:1, 새번역]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Heb 11:1, NIV] Now faith is confidence in what we hope for and assurance about what we do not see.
글을 쓰면
사람은 자기 삶을 바라보게 된다.
그저 흘러가던 하루가
하나의 장면이 되고,
지나가던 생각이
하나의 질문이 되고,
평범한 하루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내 삶의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시 꿈을 꾸게 된다.
글쓰기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다시 깨워준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쓰다 보면
사람은 다시 꿈꾸게 된다는 것을.
현실이 아무리 버거워도
마음 어딘가에서
다시 미래를 그리게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쓰다 보면
살게 되고,
살다 보면
다시 꿈꾸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