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상처의 뿌리를 풀어내는 법
우리는 종종 오래 지난 일을 떠올리며
‘왜 아직도 이게 아플까?’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말로는 괜찮다 하고,
이제는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해도
문득 어떤 말 한마디, 어떤 상황에서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살아나
가슴을 울리는 순간이 있다.
나는 지난 10년 넘는 시간동안, 많은 이들과의 글쓰기를 통해 자기 안에 남아 있는 ‘그 일’의 흔적과
조용히 마주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다.
상처는 시간이 아니라
‘나만의 해석’으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글은 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깊은 도구다.
글은 마음의 거울이다
말로는 숨길 수 있는 감정도
글 위에서는 숨지 못한다.
흩어져 있던 마음이 형태를 갖추고, 그 형태가 나를 이해하는 단서를 만든다.
그래서 글을 쓰다 보면
묻어두었던 상처가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글을 쓰니까 오히려 더 힘들어요.” “그 일이 떠올라서 머리가 아파요.”
“이제 겨우 덮어놓고 잘 사는데 굳이 이걸 꺼내야 하나요?”
나는 그 마음을 깊이 이해한다. 왜냐하면 상처는 단순히 ‘기억’이 아니라 그때 붙잡지 못했던 감정의 잔향이기 때문이다.
그 잔향은 글 위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이름을 갖게 된다.
몇 년 전, 한 수강생에게서 떠오른 상처의 순간
몇 달 동안 함께 글을 쓰고 있었던 한 분이 있었다.
성실하고, 깊고, 누구보다 삶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런데 글은 어딘가 막혀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지 고민이 깊어졌지만,
억지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그저 기다릴 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우리가 함께 쓰던 글쓰기 온라인 커뮤니티 카페에
그분의 글이 소용돌이처럼 올라왔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밤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에게 소리를 지르며 온 집안을 부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 글은 그녀가 20년 넘게 닫아 두었던 방의 문을 처음 여는 것이었다.
그때 그 아이가 느꼈을 공포, 어디에도 숨지 못했던 작은 몸,
심장이 터질 듯 뛰던 감각이
여전히 지금 여기에 생생히 살아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며 마음이 너무 아렸다. 그녀의 글이 결코 가벼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좀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가능한 가장 진심 어린 문장으로 댓글을 달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녀는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기 시작했고,
이제는 남 탓도, 자신 탓도 아닌 ‘그때의 상처가 설명해주는 지금의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선생님,
이제야 제가 왜 이렇게 두려움이 많았는지 알 것 같아요.
이제 저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처는 떠오른 그 자리에서
비로소 풀어지고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상처 글쓰기 3단계 — 수면 아래를 안전하게 다루는 법
그렇다면
이렇게 떠오른 상처를
어떻게 글쓰기로 잘 다룰 수 있을까?
사실, 수강생들에게 일부러 상처를
꺼내게 한 적은 없다.
하지만 글을 쓰다보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진한’ 아픔들이 꺼내진다.
그럼 이럴 때 이 상처를 안전하게
꺼내고 다루는 방법은 무엇일까?
1단계 — 있는 그대로 적기 (사실 기록)
이 1단계의 목표는 ‘해석’이 아니라 ‘기록’이다.
좋았던 장면도, 두려웠던 순간도,
당시 상황을 모조리 적는 것이다.
문장은 엉망이어도 된다.
재구성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렇게 시작하면 된다.
“그날 나는…”
“그때 나는…”
사실을 적는 순간
상처는 더 이상 막연한 덩어리가 아니라
‘붙잡을 수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된다.
2단계 — 그때 내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 분리)
사람들은 종종 상처를 떠올리면
감정이 너무 커져서 압도된다.
이때 감정을 분리해 적는 것이 중요하다.
“그 순간 나는 했다.”
두려웠다.
외로웠다.
수치스러웠다.
버려질까 무서웠다.
이 단계에서
감정은 ‘나’가 아니라 내가 경험한 것이
나와 분리된 감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건 매우 중요한 분리다.
3단계 — ‘지금의 나’가 ‘과거의 나’에게 말하기 (재해석)
마지막 단계는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작은 문장 하나라도 건네보는 것이다.
“그때의 너는 잘못이 없었어.”
“너는 너무 두려웠겠구나.”
“네가 그 자리를 잘 버텼구나.”
상처는 ‘새로운 해석’을 만나는 순간
비로소 무게가 풀린다.
이때, 수많은 이들이 오열하고,
멈추지 않는 눈물로 당혹스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이 때가 바로,
상처 치유의 정점의 시간이다.
단번에 되지 않아도 좋다.
이제 더이상 그것이 나를 짓누르지 않는구나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쓰고 정리하는
과정을 지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가벼워진 것을 느낄 것이다.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단단하게 확신하게 된 과정이다.
글쓰기는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돌보는 일이다
상처가 떠오르는 것은
문제도, 후퇴도, 실패도 아니다.
오히려 내 마음이
그때의 나를 드디어 다시 만날 준비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매우 소중한 자리다.
글쓰기는 그 자리에서
상처를 찌르지 않고,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상처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다루기 쉬운 크기’로 만들어 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용히 다시 살아난다.
오늘 당신에게 건네는 문장 하나
만약 오늘,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아직도 아픈 어떤 장면이 떠오른다면
이 한 줄로 시작 해보기를 권한다.
“그때 나는… 이렇게 느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당신이 당신을 회복시키기 시작하는
‘빛나는’ 첫 문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