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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너는 N번방에 가입했을까

부츠사진이 온라인 강간이 되기까지

by 안스텔라

중앙지검 ㅇㅇ부 ㅇㅇㅇ검사라고 합니다.

다름아니라 귀하께서 지하철에서 입은 성범죄 피해 사건을 배당받아 제가 주임검사가 되었습니다.

경찰관의 부적절한 초동조치에 상처를 받아서, 수사기관에 불신을 갖게 되신 것 같아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려고 연락하였습니다. 특히 귀하께서 임신 초기였는데, 그 당시에 느꼈을 불안감과 공포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위험한 상황이 될 뻔한 것에 대하여 같은 여자이고, 아이 엄마인 저로서는 그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에 저라도 대신하여 사과를 하고 싶습니다.

...

이 사건은 주임검사로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서울지하철 9호선 동작역 여자화장실. 옆 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꺼림칙해 일을 본 뒤에도 나가지 않고 뜸을 들였다. 옆 칸은 덩달아 소리를 죽였다. 기다리다 못해 먼저 나왔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면대 앞에서 조금 더 머물렀더니 드디어 용변칸이 열렸다. 검은 파카에 곱슬머리, 덩치 큰 남자가 나왔다.


바로 내 눈앞에 남편이 있기라도 한 듯 크게 혼잣말을 하며 잰걸음으로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남자, 화장실에 남자가 있었어!" 무서웠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내 표정에 곧장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남편과 둘이 다급하게 남자를 막아섰다. 도망갈 타이밍을 놓친 어수룩한 얼굴이 쭈뼛거렸다. 2대 1, 멍한 눈빛의 현행범. 내심 마음을 놨다. 칼에 찔릴 일은 없겠다.


- 아니 거기, 왜 들어가 있어?

- 남자화장실이 다 차서 똥 누러 들어갔어요.

- 말도 안돼. 아무 소리도 안들렸어, 물도 안내렸잖아?


그 말에 나는 남자화장실로 돌진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의 스마트폰 G7 사진첩에는 내가 신은 부츠 사진이 세 장 있었다. 무릎까지도 못 간 걸 보니 카메라 각도가 안 나와서 그렇게나 부스럭거렸던 거다. 내 사진 이외에도 어느 타일바닥 사진과 또 다른 몰카 사진, 간간이 본인 셀피들이 이어졌다.


경찰이 여섯 명이나 왔다. 그 중 웃음기를 머금은 중년의 경찰은 "애매하네, 애매해." 대수롭지 않은 듯 사진첩을 살폈다. 애매해? 피칠갑에 죽어나야 사건 사고야? 마음과는 달리 아무 말 못하고 외투를 구겨 잡았다. 나와 남편, 몰카범, 역무원 둘, 경찰 여섯이 한 공간에 있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였다. 화장실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 같았다. 사진이 부츠에서 끝나지 않았다면 이 자리가 어땠을까. 모인 사람들은 경찰들이었다. 예민한 사람으로 비쳤다가는 불리할 것 같았다. 가슴이 뛰었다.


범인의 아버지는 큰아버지라는 사람을 데리고 지구대로 왔다. 경찰은 연신 "미성년자니까 -" 라며 말을 흘렸다. 칸막이를 사이에 둔 나는 범인과 보호자가 있는 저 너머를 차마 보지 못하고 귀만 기울였다. 큰 남자 셋과 그들의 태연함과 친근한 대화. 남편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아내는 지금,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해요." 격앙된 그의 얼굴이 가여웠다. 남편이 나를 위해 울먹이듯, 누군가 우리를 가엽게 보아주길 바랐다. 뭐 이런 일로 왔냐는 면박을 받기 전에 “괜찮아요” 미리 거짓말하고 싶었다.


경찰은 나중에 연락을 줄 거라고 했다. 수사는 걱정 말라고 했다. 진술을 마친 우리는 뒷문으로 돌아나왔다. 경찰이 가해자를 피해 뒷문으로 안내했다. 스마트폰 플래시로 겨우 시야를 확보할 만큼 어둡고 불편한 뒷길이었다. 우리가 잘못한 사람들 같았다. 남편은 내 손을 꽉 잡아주었다. “괜찮아.” 거짓말이었지만 꼭 거짓말은 아니었다. 남편이 있어 괜찮았다. 내 공포를 공포로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어 운이 좋았다.


경찰 말대로 연락이 오긴 왔다. 인계 내용이었다. 사건이 여성청소년수사ㅇ팀 ㅇㅇㅇ 수사관에게 배당됐다, 흑석지구대 ㅇㅇㅇ 수사관이 사건을 접수했다, 동작서에서 서울청 지하철 수사대로 이첩됐다, 지하철수사대ㅇ계ㅇ팀 ㅇㅇㅇ 수사관이 접수했다, 그런 식이었다. 그게 다였다. 이렇게 무마되는 건가 싶었다. 남편은 수사 과정을 문의하며 경찰을 귀찮게 했고, 그 덕에 나는 그들이 말하는 원칙대로 상세 진술서를 작성해야 했다. 지하철경찰대가 보낸 질문지에는 괴이한 물음이 많았다.


문 : 피해자 분이 확인한 사진이 어떤 사진이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답 : 제 다리, 부츠사진이 세 장 있었습니다.


문 : 피의자가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것에 동의하였나요

답 : 아니요.


문 : 피의자가 어느 정도 거리에서 진술인을 촬영한 것 같나요

답 : 옆칸입니다.


문 : 그리고 어떻게 하였나요

답 : 질문의 요지를 모르겠습니다.


문 : 피해당시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답 : 남자가, 제가 있던 여자화장실에 있었다는 자체에 이미 쇼크를 받았습니다. 당황스럽고 충격스럽고, 말문이 막혔습니다.


문 : 그때 진술인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나요

답 : 한 달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하의는 레깅스에 부츠를 신고 있었습니다.


문 : 피의자의 인상착의나 의상에 대해 진술해 보세요

답 : 170후반에서 180초반대 정도 되는 키에, 파마 머리, 안경을 꼈고, 통통한 얼굴에 눈이 풀려있었습니다. 현행범은 지구대로 곧장 연행됐습니다. 인상착의에 대한 진술은 지구대를 비롯해 관련 모든 사람들이 답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문 : 피해 당시 주변에 목격자나, 증명할 증거가 있나요

답 : 남편, 핸드폰 사진, 동작역 역무원 2인, 피의자 증언, 화장실 외부 설치 카메라


질문이 반복됐다. 마치 피의자가 누군지 모르는 투였다. 현장에서 지구대로 데려갔으며 그 자리의 모두가 몰카사진과 CCTV를 확인했음은 물론, 피의자 진술 및 나의 진술이 있었음에도 증명을 원했다. 피곤했다.


우리는 끝내 결과를 듣지 못했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났는지, 재판을 하긴 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났고, 수사대와 법원 등 연관이 있을 법한 모든 곳에 전화를 돌렸다. 응답은 차가웠다. 미성년자는 신상을 알려주는 게 법적으로 불가하다고 했다. 그렇게 그날 일은 증발했다. 우리는 참 집요하고 귀찮은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을 그 학생은 N번방에 가입했을까. 26만 회원 중 다수가 10대 20대라는 기사를 읽고 그를 떠올렸다. 몰카범은 당시 스무 살을 한 달 앞둔 열아홉이었다. 검찰 수사관 말로는 이런 경우 처분이 되어도 단순 보호관찰 정도라고 했다. 하다 못해 봉사활동이나 소액의 벌금도 없다. 범행 당시 현장에서 확인한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나 이외 다른 몰카 사진도 있었다. 몰카는 그렇게 흔한 일이고, 하필 내가 당했으며, 하필 내게 들켰다.


박사방 조주빈은 네이버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음란물 다운로드의 처벌 여부에 관한 질문에 답을 달았다. 아동청소년 음란물만 아니면 된다고 조언했고, 단속에 걸릴 확률을 알려줬다. 내가 겪었던 몰카범이라면 이미 실제 적발 경험까지 있으니 꽤 신뢰할 만한 조언 자격을 갖춤 셈이다. 화장실에 숨어들었다가 걸리고 경찰이 출동해도 학생증을 내미는 데 쫄지 마라. 겁먹을 거 없다. 싫은 소리 하거든 참고 들어라. 현장을 벗어나면 끝이다. 아무 일 없던 듯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와 남편 앞에서 어리숙하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좀 더 과감하고 지능적으로 진화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그때 이미 불법촬영물을 온라인상에 공유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N번방 회원 수 26만에, SNS와 음란물싸이트 등의 넓은 범주를 고려하면 사이버 성범죄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들이 맘껏 증식하고 생장하도록 온실은 어떻게 형성됐나. 주임검사는 내게 메일을 보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했다. 내 강력한 항의글을 보고 보낸 답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법과 원칙에 따라서, 없던 일이 됐다. 나는 그 아이로부터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한 마디 듣지 못했다. 조주빈은 처음부터 과감했을까?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도 좋다고 암묵적으로 허락한 이들, 가족과 국회와 사법기관 모두에 그 책임이 있지 않나.




문 : 피의자의 처벌을 원하나요

답 : 네, 피의자의 처벌을 원합니다. 경찰의 안이하고 너그러운 처우가, 뉘우치고 돌아설 수 있었던 청소년을 더 악하게 만듭니다. 그 아이는 너그러운 시스템에 안도하며 앞으로 더 교활하고 과감한 범죄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뿐만 아니라 지인과 가족, 혹은 제가 알지 못하는 사회의 많은 약자들이 한시라도 같은 공포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엄벌에 처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스무 살을 한 달 앞둔 고3 몰카범은 결국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공공화장실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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