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립다. 적응형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
가까운 친구들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쓰지도 않을 바디샴푸와 세안제를 구비해놓고 여분의 이불을 빨아두는 일은 내게 얼마나 보람이었는지 모른다. 누구든 들르고 들른 김에 같이 밥 먹고, 정신 놓고 대화하느라 차가 끊기면 자고 가는 식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묶음 과자 옆에 편의점 와인을 두고 싸구려 초를 켜면, 그러면 꽤 살 만했다. 무거운 백팩과 잦은 야근과 박봉이 다 괜찮아졌다. 그렇게 밤 늦도록 차나 와인을 마시는 게 낙이자 놀이였다. 20대가 낭만적이었던 이유는 단칸방에 모인 사람들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작심으로 동틀 때까지 술을 퍼마시곤 했던 남편은 나를 만나고부터 집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와인 한두 잔에 대화하는 놀이에 길들여졌다. 많게는 일주일에 삼사 일을 그렇게 살았다. 영화와 음악을 공유하고 근황 얘기에 같이 웃다가 어쩔 땐 울다가, 발을 구르며 화내다가 그랬다. 연애시절을 꽉 채운 놀이는 결혼 후에도 이어졌다. 화장지를 사든, 냉동순대를 주문하든 초대할 사람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집놀이가 식료품의 수량과 유통기한 등 소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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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집에 우리뿐이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우리는 한 달 내내 못 본 얼굴들을 그리워하는 중이다. 실은 나는 그러려니 하는데 남편이 많이 그리워한다. 배달음식을 시켜놓고 이건 누구 스타일이라느니, A 누나는 다다음 달이 출산인데 선물을 싸놔야겠다는 둥, B 형은 뭐하고 있을까, 부산에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께는 마스크가 있으려나, 해외 사는 지인에게 천마스크와 필터를 붙여주자 등등. 옆동네 친구부터 돌고 돌아 지구촌 한바퀴다. 실제로 몇몇에게는 손수 포장한 선물을 부치기도 했다. 그게 되려 위안을 주었다.
어제는 불쑥 “이번 주말에 올 사람 있나?” 남편이 태연하게 물어왔다. 손님 일정에 관한 대화 자체가 오래간만이기도 하고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그나 나나, 코로나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뒤로는 어느 누구하고든 “다 끝나고 만나”라는 말을 해왔다. 그게 맞으니까. 무엇보다 10킬로그램도 안 되는 작은 사람, 아기에게 미칠 위험 요소를 최소화해야 했다. 둘 중 누군가가 고열이 끓고 격리되어야만 한다면, 아니 둘 모두 그런 상태가 된다면. 남편과 나 이외에 아기를 목숨 다해 보살펴줄 사람이 떠오르질 않는다. 혈육이라 해서 체력과 근무 여건과 주거 환경이 모두 따라주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쉬운 부탁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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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적적한 일요일 밤에는 넷플릭스 앤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나자 스크린을 올리던 남편이 천연덕스레 제안했다. 코로나니까 다들 어디 나가지도 못하잖아. 영화관도 못 가고 놀 데도 없고. 여기 모여서 영화 보고 밥 먹고 하면 되겠다 그치, 코로나니까?
쿡 웃고 그래, 니 말이 맞다 선심쓰듯 동의해줬는데 오늘 내리 생각해보니 웃어넘길 얘기만은 아니다. 앞으로 몇 개월은 알 수가 없다. 적응형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한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달라지고 변형하고 적용해야할지 모르겠다. 의자를 2미터 간격으로 띄워서 무릎 위에 개인 쟁반을 올리고 티타임을 할까. 그런 용도로 쓸 쟁반은 다이소에 있으려나. 2미터 간격이라니, 의자가 베란다를 뚫고 나가야겠네. 오고 가는 여정에 필요한 마스크가 부담일 테지. 아니, 마스크 쓰기가 아까워서 더 못 나오는 거 아냐?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은 장갑을 끼고 움직이면 도움이 되려나. 앞으로 관계의 형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재난영화 장면들만 자꾸 떠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