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자식 낳아봐라’

낳았다. 머리카락 한 올마저 불신하게 됐다.

by 안스텔라

나는 목숨을 다해 아기를 낳았다. 스무 시간을 넘기며 휴지조각처럼 고부라진 모양으로 버텼다. 자음과 모음을 모아 단어를 구성할 여력이 없어 아프다 소리도 못 했다. 남편은 입술만 파르르 떠는 나를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진통제를 놨지만 고통이 해일처럼 닥쳤다. 해일은 더 짧은 간격으로, 더 세게 몰아닥쳤다. 구멍 구멍마다 짠 물이 디밀어 실성한 조난자처럼 더는 견딜 자신이 없었다. 살려달라 간청했다. 나와 함께 고통 중일 아기가 버텨주기를 기도했다. 좁은 구멍에서 두개골을 욱여넣고 있을, 한 주먹 만한 생명은 나보다 더한 고통을 지나고 있을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내게도 이렇게 끔찍한데. 눈물이 멎지 않았다.


만 하루를 꼬박 채워서 힘들게 낳은 아기. 그런 아기가 울면 너무나 미안했다. 접어지지 않는 뼈를 포개어 온몸을 구기고 기껏 세상에 나왔더니 울 일만 많아 미안했다. 너의 생을 시작하게 한 내가 뭐라도 책임지고 싶었다. 네 언어를 못 알아들어서 속상했다. 숟가락 위에 얹으면 딱 맞을 크기의 작은 주먹이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절박하게 허공을 휘젓고, 목젖이 보이게 벌린 입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시뻘건 얼굴이 끝내 터지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포효하는 짐승처럼 매일 매일 밤, 아기는 그렇게 울었다. 너도 자식을 낳아보면 다 이해할 거라는 사람들의 막연한 말이 떠올랐다.


자식을 낳아보니 그랬다. 연약하고 무기력한 아기가 가여웠다. 아기의 생각과 절망을 알아듣고픈 초조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울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었다. 속시원하게 필요를 알 수만 있다면 채워주고 긁어주고 보듬어줄 것이었다. 언젠가는 이 아이가 커서 자기 주장을 하고 내게 요모조모를 설명해줄 날이 오겠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손 잡아주며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부모 역할을 할 날도 오겠지. 그때까지, 나는 충분히 안전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던가, 누군가를 키워낼 만큼 강인하긴 한 사람이었던가 의심하고 의심했다.


너도 자식을 낳아보면 다 이해할 거다, 라니.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말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다 큰 자식을 무릎꿇려서 자기 고집을 일관하는 어르신,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식을 협박하는 부모를 정말이지 머리카락 한 올도 이해할 수 없다. 당최 왜들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목숨과 바꿔 낳은 생명을 낙담하게 하고 고개 숙이게 하는 심보를 이해할 수 없다.


일방적으로 씨앗을 심고 세상에 던져놓은 건 부모다. 부모가 원해서 낳았다. 낳아달라고 애원한 적도 없는 자식에게 ‘도리를 다해 은혜를 갚아야 한다’ ‘부모를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뻔뻔함을 변호할 길이 없다.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 병이 났다는 엄살이나 늙고 쇠약한 몸을 무기삼아 죄책감을 덧씌우는 짓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자녀의 진로를 조정하려는 짓까지 모든 만행이 이해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자녀가 고통으로 일그러져 울고 있다면 나는 그 모습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다. 이 아이가 최대치의 기쁨과 생동감으로 생을 보란듯이 살아가길 원한다. 내가 겪은 것보다 나은 세상에서 사랑과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다. 그 누구를 위해 빚지듯 살아가는 삶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가치있게 살아가길 원한다. 그게 내 목숨을 다해 낳은 보람이고 기쁨일 것이다.


‘자식을 낳아보라’는 말은 낯뜨겁다. 고생을 공유하고 이해 받고 싶었을 테지만, 같은 경험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자녀를 보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상을 기대하며 아이를 계획하지 않았고, 원해서 낳은 아이에게 생색을 내고 싶지도 않다. 아이야말로 선택권 없이 세상에 왔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온 힘을 다할 일만 남았다. 부모는 온 힘을 다해 생존을 책임질 일만 남았다.


자식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지나온 고생의 대가와 결과물로 바라보는 비인격적인 산법에 반대한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금융에 의지하는 쪽이 차라리 안정적이다. 자녀는 투자 상품이 아니다.


“자식 낳아보면 너희도 내 심정 알 거다”

예. 낳았더니 더 모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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