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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손님과 코로나

세상에, 그녀의 무심함에는 악의가 없다.

by 안스텔라

한 달만에 손님이다. 그동안 사람이 꽤 그리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안으로 들어선 친구는 의기양양하게 치킨박스를 내밀었다. 평소에 하던 포옹 대신 그녀의 겉옷을 받아들고 손을 씻도록 뜸을 들였다. 부엌 개수대로 간 친구는 세제 펌프를 누르고 흐르는 물에 3초 쯤 손을 갖다 댔다.


간결한 손씻기는 당황스러웠다. 국적과 지위와 나이를 초월해 예외 없이 어린 아이처럼 손을 닦는 시절이 아닌가. 손가락 사이사이, 손톱 아래를 순차적으로 비벼 닦으면 20초는 지루하지 않게 지나갔다. 3초라니. 세제가 닿자마자 비누기만 흘려보내는 물 묻히기였다. '저 손에, 아기를 안게 할 순 없겠는데.'


그 후 그녀가 닿는 모든 곳이 신경쓰였다. 다시 씻으라 요구를 할 엄두는 안 났다. 여기까지 온 반가워야 할 얼굴에게 지적을 하긴 그랬다. 게다가 나보다 몇 해 나이가 많았다. 웃으며 말하면, 웃음을 되돌리며 '괜찮아, 씻었어.'라고 답할 것도 뻔했다. 대신 아기가 두세 시간은 깨지 않고 쭉 잠들어 있기를 속으로 바랐다. 그녀가 돌아가는 시각까지 아예 만날 일이 없도록, 피부가 닿을 일이 없도록, 그러면 좋을 것이었다.



식탁 위에 치킨을 펼치고 각자의 접시를 비우며 대화가 진행됐다. 세상에, 부모 자식도 서로 방문하기 조심스러운 상황이지 않니.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이야. 요즘엔 식당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일자로 앉아 먹는다잖아. 어깨나 어딘가에 바이러스가 매달려서 떨어지면 어떡해. 병을 퍼뜨렸다는 죄책감은 그거 어쩔거야. 약한 사람을 죽게 만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게 진짜 무서운 거야. 흥분해서 말하던 그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잠시 말을 끊더니 자신의 접시에 남은 치킨 조각을 가르켰다. 이미 갈라놓은, 살이 하얗게 드러난 먹다 남은 음식이었다. "이거 더 먹을래?"


바이러스의 공포에 관한 이 모든 대화 끝에, 자신의 접시에 남은 음식을 가져가라고 말하는 장면은 기묘한 상황이었다. "아니, 배불러.” 가까스로 지은 미소가 위태로웠다. 밥 먹기 전부터 척추를 타고 음흉하게 기어오르던 불신이, 이제는 활활 타올랐다.


그즈음 아기가 깼다. 그녀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반갑지 않았음 좋겠어, 차라리 아기를 싫어하면 좋겠어. 속으로 되뇌이며 개수대로 가서 손을 씻었다. 손바닥을 깎아버릴 기세로 손과 손을 마찰시켰다. 식사 중이거나 키보드를 만진 후 아기를 만질 때 손을 씻는 편인데, 사실 집에만 있으면 그렇게 유난을 떨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보란 듯이 손바닥을 긁고 문지르며 비누칠하는 시간을 끌다가 아기를 데리러 갔다. 그녀가 잘 봐 주길 바랐다. 아기는 얼굴의 반이 삼켜지도록 입을 벌리고 비명에 가까운 울음을 내질렀다. 오래간만에 낯선 얼굴을 봤으니 그럴 만했다. 차라리 잘 됐어, 안도하며 아기를 타이트하게 안았다. 이렇게 그녀에게 넘겨주지 않고, 계속 안고 있으면 되었다. 식탁 앞에 앉아있던 그녀는 어느새 이리로 다가와 양손을 펼쳤다. "내가 좀 안을까?"


이게 이정도로 뒤골이 화할 일이었을까. 민망한 사실이지만 아찔할만큼 나는 그랬다.


뒷골이 화하고 창자가 꼬였다. 또 손을 씻지 않았다. 잘 좀 보라고 씻기를 시현한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치킨 먹은 손을 씻지 않고 이리로 왔다. 집에 들어선 이래 한 번만 제대로 닦았어도 내가 지금 이렇게 불안하지 않아. 우리의 대화 속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 내 노력과 태도는 의미가 없었다. 이 정도면 무지를 넘었어. 무례한 거야. 오래 알고 지낸 그녀의 인성과 가치관에 대한 의심으로 화가 번지고 번졌다. 온몸이 불덩이었다.


우는 아기를 넘겼다가는 일이 커진다고 얼버무린 뒤, 아기를 방으로 데려 갔다. '아가, 다시 데리고 나갈 일 없도록 조금만 조용히 있어 줘!' 손을 빌어 부탁하고픈 심정이었다. 곧이어 따라 들어온 그녀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방을 둘러보았다. 벽면으로 바짝 붙인 아기용 매트리스 옆에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이부자리가 있다. 그녀는 이부자리 가장자리에 발끝을 붙이고 그 너머의 아기 매트리스를 넘겨다봤다. "아기 침대가 엄청 크네!" 나는 오직 그 발끝, 우리 이불에 닿은 그 발끝을 보느라 정신이 혼미했다. 균과 먼지가 스멀스멀 퍼져 온 이불을 시꺼멓게 적시고 있었다. 저 발, 저 발 당장 치워. 거긴 우리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눕는 잠자리란 말이야. 말 없이 침실에 든 것부터, 모든 게 고까웠다.



그녀가 돌아가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친구의 방문이 이렇게까지 마음 쓰이고 고통스러운 일이어야 했나. 자문은 형식적이었다. 아무래도 반성을 하기엔 억지스러웠다. ‘이 시국에, 그렇게 무례할 수는 없는거야. 내가 잘못된 게 아냐.' 억울했다. 몸이 식지를 않았다. 모처럼 친구와 외출하는 기분으로 유쾌하고 싶었다. 비록 집 안이지만, 맘껏 대화하면서 기분전환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럼 애초에 초대를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 사람을 만나되 그냥 좀 조심해주길 기대하면 안 돼? 영영 문 닫고 살 거야? 그래도 마음이 덜 상하는 길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어째서 예민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요청하고 강조하지 못 했을까. 결국 분한 인상만 남기도록 방관했을까.


'20초 이상은 비눗물에 씻어야 감염 예방이 돼.'

'지금은 음식을 나눠먹는 게 위험한 상황이잖아?'


그렇게 말하지 못한 나를 탓하자니 억울했다. 나는 보여줬고, 우리는 대화했고, 매너는 상식이었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원칙을 말하는 팍팍함을 견딜 수 없었다. 까탈스러운 사람이고 싶지 않았고 필요 이상의 법석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유머러스하고 유연하고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이고 싶었던 거다. 갑자기 이상적인 인간이 되려한 건 아니다. 잠시만. 나 왜 이렇게 엉켜버렸지?


어물쩍 넘어간 순간들은 나를 이상적인 인간으로 만들기보다 이중적인 인간으로 남겨놨다. 돌려말하기와 침묵은 이미지를 위한 욕심이었다. 부드러운 화법으로 혹은 평정심으로 사람좋은 이미지를 고수하고 싶었다.


나는 소통에 실패했다. 게다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 그녀의 무심함에는 악의가 없다. 내 눈치보기가 고질적 근원이었다.


"너랑 대화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좋아."


돌아가기 직전 친구가 남긴 말과 내 뜨거운 심장 사이의 간극. 유부 안에 밥알을 짓이겨 넣듯 화를 밀어넣어야 했던 나는 그 간극에 가랑이가 찢어졌다. 코로나는 위험하고, 내 아기는 소중하고, 우리는 손을 잘 씻어야만 한다. 이 치명적인 사실을 양보할 생각은 없다. 설령 나라는 사람이 평균보다 예민하고 좀 날카로우면 어떤가. 가족과 이웃이 안전할 길이라 믿는다면 소신껏 명료해야 했다. 거칠고 불편한 순간은 지나갈 테고, 당당하고 엄격한 모습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더욱이 무디고 무모한 사람에게 자극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한 선의다.


나이스한 미소를 짓고 말을 얼버무린다고 고작 그런 방식으로 내가 이상적인 사람이 될 수는 없었다. 뼈 아픈 진실이지만, 앞으로도 나는 이상적인 사람에 도달할 수 없을 거다. 그저 그렇게 내 마음을 태워버렸고, 허망하게 가랑이만 찢어졌다. 그녀의 무심함에는 악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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