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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는 하자 투성이 집에서 매우 기뻤다고 한다

by 안스텔라

바닥누수 공사로 다녀간 사람만 일곱 명. 이사한 지 5개월인데 보수는 끝이 없다. 바뀐 집주인은 적극적이지만 영리하진 않다. 직접 해보겠다고 나서서 누수가 난 지점으로 추정되는 시멘 바닥에 망치질을 하다 보일러 파이프를 구멍냈다. 부엌은 물바다가 되고, 놀란 아저씨와 나는 동그라진 눈을 교환했다. 어이가 없는 상황에 터지는 웃음은 막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그때 웃지 말 걸 그랬다. 하필 집주인은 못난 표정으로 천진하게 웃는 보조개가 귀엽고.


집주인이 일을 낸 바람에 그날은 아예 온수를 못 쓰게 됐다. 밤낮 샤워하는 남편은 그날 밤 얼음물을 끼얹으며 으어으어어억 이상한 소리를 냈다. 내일 뜨거운 물 나올 때 하면 될 걸 뭘 굳이 이 상황에 샤워를 하겠다고. 무디고 대충 사는 나는 무척이나 깔끔한 남편이 안타깝다.


다음날, 공사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평소 손님을 위한 커피는 보통 남편이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기술자들을 위해 커피를 냈다. 인부들과 함께 다시 집주인도 왔다. 잔을 받아 든 예순다섯의 집주인이 설탕은 넣지 말지, 공연한 푸념을 하고 걱정 말라는 의미에서 우리집에 설탕 없어, 짧게 답했다. 그럼 요리할 땐 어떡해, 하기에 나 요리 안 해, 말했지만 나는 어제 저녁 고구마맛탕을 했고 아침에는 남편의 점심을 싸주었다. 아무렴 상관이 없었다. 귀한 초콜릿이라고 데낄라 초콜릿을 커피잔 옆에 내려놨더니 으아 취한다 아저씨들이 진지하게 장난을 치고 거기에는 재미가 없어서 대꾸를 안 했다. 뒷정리할 때 보니 역시 물조절에 실패했는지 커피는 세 사람 다 반 이상 남겼다. 나도 내가 만든 것들을 별로 안 좋아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한참 땅을 부수고 헤집고 흙이 쌓여가는데 또 누수 지점을 잘못짚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게 탐지기술자를 좀 부르라니까...자꾸 눈대중으로 해보겠다고. 집주인은 쩝쩝 입맛을 다시며 시멘 묻은 사람들과 함께 퇴장했다. 흙이 밟히는 부엌을 닦으며 이게 다 뭔짓인가 싶었다. 도대체 몇 번째 공사인지 가구를 여기저기 옮겨놔서 잡다한 물건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공사 때마다 난장판이다. 마치 첫 이사 온 느낌으로 카펫과 가구를 한곳에, 저리로 몰았다. 한창 정리 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KT인터넷 설치기사가 왔다.


선생님, 저희가 분통이 터져서 그러는데요 SK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래요? 인터넷이랑 티비 7년 썼는데 약정에 묶이고 가격 조정 눈속임에 낚이면서 내버려둔 건 제가 호갱이지만 500메가 상품이 10메가도 안 나오면서 저 당당함과 어쩔 수 없다류의 태도와 어차피 기술적으로 안 될 일을 진즉 인정했으면 됐을 걸 말로 돌려막기하고 엔지니어 보내줄 테니 달라질 거다 기다려라 하면서 5개월을 질질 끌고 개선은 하나도 안 되고... 우리 돈 다 버렸어요! 여기 개발지역이라고 개선 공사를 안 했다는데 그럼 왜 다른 지역이랑 돈은 똑같이 받아먹고 인터넷은 쓰지도 못할 저급이야. 진짜 사기꾼들이야. KT엔지니어는 답했다. 그건 SK의 잘못이 아니라 기술이 달라서 원래 빨라질 수가 없는 거예요. 아니 선생님, 그 말씀은 SK기술력이 문제라는 건데 SK가 개선될 거라느니 집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느니 헛소리 한 게 기만이 아니겠어요? 많이 버는 것들은 왜 이렇게 말장난이죠? 광고, 마케팅, 지네 연봉에만 돈을 때려박고 소비자가는 다 거품이야. 에이 고객님... 그럴 땐 말이죠. 상담사 통화 말고 엔지니어랑 대화하셔야 해요 엔지니어는 거짓말을 할 수 없거든요. 선생님, 이 집에 온 엔지니어들이 죄다 이제 좋아질 거라는 말을 흘리고 나갔다구요.


KT엔지니어를 붙들고 풀리지 않을 분을 풀고서 인터넷 속도가 드디어 100메가가 넘고 200메가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니 아이구 고맙습니다 춤이 더덩실 나왔다. 누수공사 때문에 거실에 임의로 옮겨놓았던 식탁에 앉아 숨을 돌리고 베란다 밖 새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울컥할 건 뭐람. 이 기분을 어서 알리고 싶어 한창 수업 중일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날씨는 너무 좋고, 이제 인터넷은 쓸 만해졌어. 아무렇게나 옮겨놓은 식탁은 예술적인 느낌이라 맘에 들어. 행복해.


이상하게 진짜 진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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