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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뭘 얻고 싶은데?

by 안스텔라

누굴 뽑으면 되겠느냐고 엄마가 물어왔다. 평소 TV 라디오를 가까이하지 않고 새삼 세상 현안을 배우자니 뿌리가 깊고 복잡했던 모양이다. 어디에 표를 실어야할지 도통 판단이 안 서 딸에게 물은 것이다.

-엄마한테 도움 되는 사람을 뽑아야지. 정치를 통해서 엄만 뭘 얻고 싶은데?

-모르겠어.


엄마에게 와 닿을 현안이란 어떤 걸까. 우선 제테크, 부동산, 투기와 같은 단어들은 아웃이다. 부모님에게 집이란 순수한 거주 공간일 뿐, 놀리거나 굴릴 여유분은 평생에 없었다. 자가라 집세를 내지 않고 대출금에 매여있지 않으므로 대출지원, 이율, 주택공급 등도 와닿는 주제는 아니다. 평소 관심사는 요리와 건강식품이며 산과 바다를 좋아한다. 지역개발이 어떻게 돌아가든 평일 내내 회사와 집만 오가다 주말에 등산하러 떠난다. 최저임금 정도는 맞춰주는 일터에서 딱히 불만없이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으며, 벌이가 있음에 감사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간다.


엄마는 엄마를 위한 정치를 모른다. 딱히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1997년 부도를 맞고 남편과 둘이 뼈를 갈아 생계를 이어왔지만 악착같이 버티듯 살아왔다. 운이 좋았다. 삼사십 년이 흐르도록 가족 모두가 안전했다. 원인 모를 사고를 겪거나 재난 속에 구조를 받지 못하고 죽어버린 아이는 없었다. 열악한 작업장에서 변을 당한 이도 가족 중에는 없었다. 세상에는 뼈를 갈고 살이 문드러져도 당해낼 수 없는 일들이 있지만, 가만히 당하는 죽음이 있지만, 우리는 운이 좋았다.


-엄마는 뭐가 중요해? 어디에 힘을 쓰고 싶어?

-너희들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엄마는 자신과 연관된 정치적 유불리에는 무디지만 딸의 가정, 특히 태어난지 1년도 안 된 손주를 위해 힘을 보태고 싶어했다.




한 단에 오천 원하는 프리지아의 계절이 오면 가슴이 저릿저릿한다. 6년 째다. 손끝인지 관자놀이 즈음인지 프리지아만 보면 팔딱팔딱 거품이 일었다. 봄이 왔구나. 노란색이구나. 그 계절, 올해 여섯 번째 4월 16일이 왔다. 3년 전 이 날은 지인을 만나 홍대를 걸었었다. 커피와 맥주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맛을 느낄 날이 아니구나 깨달았다. 2년 전에는 그날이 되기 이틀 전에 전시를 보러갔었다. 핑크색 종이로 만든 갈대밭이 몽환적으로 펼쳐진 전시실이었는데 내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졌다. 천장이 내려앉고 눈물은 멎지 않았다. 이 불편함은 아마 평생 품게 되리라 짐작한다. 매년 4월 16일을 마주한 내가, 선 자리를 돌아보고 덜 부끄럽고 싶었다. 미안함을 갚아나가는 인생이길 바란다.


목이 매여서 엄마에게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정치로 얻고 싶은 게 있다. 뻔한 아침에 뻔한 대화를 나누고 무심하게 집을 나선 아이가 몇 시간 뒤 바다에 잠겨 있다는 소식을, 대충 보도하고 대충 대응하는 언론과 정부를 원하지 않는다. 파란 입술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무책임하게 방치한 이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내버려두는 세상이 아니길 원한다. 한 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이는 게 통념이길 원한다. 죽음이 식상하다는 표현을 감히 쓸 수 없는 사회를 원한다. 내 아이가 제발, 착하고 정직했으므로 죽지 않기를 바란다. 신체를 촬영하고 인간을 능욕하는 치한이 엄벌에 처해지길 바라고, 온몸에 똥칠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공개한 약자더러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입술이 부끄러워지길 바란다. 이 틈에서 집값을 운운하고 보상금이 과하다느니 하는 욕망의 혀가 힘을 잃길 원한다. 어디에 살고 어떤 직종이든 안전, 생명, 존엄을 보장받길 원한다.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초저가의 총알택배와 직관적인 서비스에는 동참하고 싶지 않다. 정치를 통해, 공익을 위한 개입을 통해, 약자들이 덜 잃기를 바란다.


우리집에는 TV가 없다. 나야말로 라디오나 유튜브, 검색 순위와 거리가 멀다. 사사로운 정치 이슈는 어지롭고 정치인 이름과 소속당이 헷갈린다. 너무 꼬이고 복잡하고 참 빨리도 바뀐다. 그런 것들을 이해하기엔 내 일상이 너무 좁다. 그러나 삶의 불편 불안 불안전에 변화를 주는 일이란 정치 뿐임을 안다. 그래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그렇게 표를 주고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기대한다. 선의로 동정으로, 의리로 표를 주고 싶지 않다. 그 날 나는 엄마에게 나와 내 아이를 위해 투표해달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프리지아의 계절은 영영 긴장감으로 맞아야 할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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