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이혼 앞에 진지해진 그가 너무 갔다고 생각했다
- 또 다시 스마트폰 들고 가기만 해. 이혼할 거야.
종일 집에 있는 날이면 남편은 하루 세 번, 한 시간씩 변기에 앉아 있었다. 나는 벙벙하게 기다렸고 때때로 심심했고, 하필 나까지 화장실이 급할 때면 꽉 닫힌 욕실 문을 부수어버리고 싶었다. 손바닥만한 화면에 코를 박고 볼품 없이 쪼그리고 앉아서 도대체 뭐하는 건데. 똥과 스마트폰, 불쾌하고 조급했다.
- 나 배 아파서 식은땀 흘리면서 기다렸잖아. 뭔 놈의 화장실, 삼십 분을 기다려도 안 나와. 그놈의 똥은 유튜브 없이는 안 나온데? 그런 거나 보고 있으니까 똥 대신 시간이 줄줄 흐르잖아. 끝내야 할 일부터 끝내고 나와야지 뭐하는 짓이야
- 스마트폰 없어도 원래 오래 걸려
- 오래 걸려 봤자지. 이십 분 걸릴 거 사십 분 걸리고, 삼십 분 걸릴 거 한 시간 걸리잖아
- 어서 돈을 벌어서 화장실 두 개인 집으로 이사해야겠다
- 그놈의 환경 탓. 스마트폰 습관 얘기하고 있는데 왜 말이 그리로 튀어? 한번만 더 똥통에 스마트폰 들고 가기만 해. 이혼할 거야
- .......나한테 자꾸 나쁜 말 할 거야?
한번도, 홧김에 이혼을 꺼내본 적이 없었다. 똥과 스마트폰처럼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빵 부스러기처럼 너저분한 불만에서 이혼처럼 거대한 말을 진지하게 꺼낼 리 없었다. 그저 기분 나쁜 농담이었다. 주방용품을 아무렇게 쑤셔넣어 수납공간을 어질러놓거나, 코 푼 휴지를 침대 위에 남겨 두었을 때 앙칼진 목소리로 뱉던 농담이었다. 이혼 당하고 싶어? 이 따위로 할 거야? 그러면 남편은 배시시 웃으며 내 팔을 감싸쥐었다.
하필 지저분하게 똥과 스마트폰이라니. 이 따위 일로 이혼이 진지한 주제가 됐다. 남편은 이혼의 의미와 결과에 대한 입장을 말했다. 이혼하면 끝이야. 나는 헤어진 사람을 두 번 다시 안 볼 거고, 절대 그럴 일은 없어. 서운함과 결의가 묻은 말투였다. 내 말이 심하긴 했다만, 그렇다고 이런 농담이 처음도 아니면서 너는 왜 이러는 거야. 어째서 거기까지 끌고 가는 거지? 끝이 예리한 장침에 깊숙이 찔린 느낌이었다. 심장이 추워졌다.
- 안 보고, 소식마저 안 듣고 살 수 있다고?
- 이혼하면, 그것으로 끝이야
- 분신처럼 속속들이 알고 지낸 시간이 온 세포에 박혔는데, 나를 완전히 지운다는 게, 그게 가능이나 해?
- 이혼을 한다는 건 그런 거야
- 같이 살지만 않으면 어떻게 돼도 상관 없다는 거네
-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이혼해놓고 만나고, 그러다 여자친구 남자친구 생기고...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추워진 마음을 녹이고 자야 편할 것 같아서 꾀고 설득해보았지만 그는 완강했다. 그가 불판 위에 올린 단어들이 빨갛게 달구어졌다. 이혼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다. 나만 추웠다. 추워진 마음이 파랗게 질렸다. 너는 나를 한 순간에 지울 수가 있구나.
- 결혼이 단지 사람을 소유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정도밖에 안 되나 보지
- 결혼을 소유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
- 동거가 안 맞아서 서로를 파괴하는 경우가 있잖아. 각자의 공간만 확보해도 건강한 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데. 실제로 집에 들어가기 싫을 만큼 룸메이트를 경멸하다가 떨어져 살면서 다시 잘 지내는 친구들을 봤어. 그런 거 많아
- 친구와 부부는 다르지
- 다르지. 부부가 더 내밀하고 소중한 관계고. 인생 1번. 그런데 한 집에 안 산다는 것만으로 데면데면한 지인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고?
- 아름다운 이별 같은 건 없어. 사랑하면 무조건 헤어지지 말아야지
- 헤어지는 게 살아남는 길이라면. 내가 나다워 질 수 없고 나를 쉬게 하는 모든 것들을 잃어가고, 어쩌면 정신과 상담이 필요할 지경이라면. 병 들어가는 사람을 옆에 두어야만 사랑인가?
처음엔 이혼 앞에 진지해진 그가 너무 갔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그보다 열 걸음 더 나아갔다. 세 시간 반 전만 해도, 설거지하는 그의 등을 향해 '그때 너를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같은 말을 했다. 여간해서는 민망함에 꺼내지도 못 할 마음이지만 수돗물 흐르는 소리와 접시 부딪히는 소음에 실어 흘린 진심이었다. 그 말을 해서 내심 뿌듯한 저녁이었다.
나는 마치 우리 생활의 일분일초가 불행했고 매일매일 아팠던 것처럼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을 강조했다. 조장하고 있었다. 이혼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렇게 쉽게 떼어지는 건 말이 안 돼. 멈출 수가 없었다.
- 모르겠어. 이혼하면 끝. 그게 내 가치관이야
- 그게 가능하구나 너는
- 그 정도의 각오도 없이 이혼을-
- 우리 아이가 나중에 어떤 선택을 해도, 우릴 영영 떠나야만 해도, 무조건 아이의 행복을 우선하기로 했잖아. 아무리 떨어져도 우리는 아이를 여전히 사랑하고 궁금해할 거고
- 응. 아이와는 다른 문제야
- 뭐가 달라. 똑같이 가족으로 사는데. 부부는 피가 섞이지 않았으니 끝은 끝이다? 안 보이면 마음이 접힌다? 어떻게 지내는지 건강한지, 전혀 알 바가 아니다? 보내온 시간이 진심이었다면 그렇게 될 리 없어. 우연히 마주치면 반가울 거야. 진심으로 사랑했고 성실했다면 이미 내 몸의 일부야, 계속 일부로 남아 있을 거고
- 이혼한 친구들 있잖아. 그 친구들한테 한번 물어봐. 그 사람들도 충분히 사랑했어, 했겠지. 한 때 사랑했지만, 다시 만나서 밥 먹고 수다 떨고 싶을 거래?
- 너를 배신하거나 악의적으로 다치게 했다면. 증오로 옮겨갈 수는 있겠지. 함께하는 동안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았다면, 네 어두운 면과 슬픔을 외면해왔다면. 하지만 우리는 귀 기울였고 힘이 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왔잖아?
너와 나의 모든 사연을 뒤로하고 한순간에 탈락될 수 있다는 암시. 언제든 결혼의 틀을 벗겨내기만 하면 내가 네게 무가치 무의미가 된다는 사실을 대면해버렸으니 허망해서 견딜 수 없었다. 어차피, 아무것도 아니었어. 다 소용없는 배려야. 형식이고 습관이고 착각이야.
내 계란후라이는 언제나 노른자가 정가운데 안착한 것이었다. 남편이 두 개를 구운 다음, 그림같이 윤이 나는 쪽을 내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노른자가 쏠리거나 흰자의 가장자리가 매끈하지 않은 것은 본인 접시에 놨다. 적어도 자신과 함께 있을 땐 내가 예쁜 것만 먹고 아름다운 것만 경험하기를 원했다. 도저히 나로서는 상상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배려와 정성이 닿았다. 내가 그토록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내가 나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옆에 머문 사람에게 주어진 사랑이었다. 자식과 친구는 자주 못 보고 멀어져도, 인생의 큰 기쁨과 큰 슬픔을 나눌 수 있을 테지만, 나는 당장에라도 잊혀질 남이다. 그렇게 쉽다.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질기게도, 우리가 서로에게 소중한 누군가로 남아야만 한다며, 짙은 새벽을 방망이질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내가 자부하는 나와 너의 신의가 진실임을 증명할 테니까. 우린 진짜잖아. 맞잖아. 난 진짜야.
어쩌면 이혼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서 집요하게 이혼을 가정했는지 모른다. 갈라서면 나는 너 보고 싶어서 어떻게 견뎌, 절대 못 해,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걸지도.
참 멀리도 왔다. 이혼 한순간이겠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