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엄마 껌딱지로 만든 당신은 아이가 낯선지 오래고.
1/ 임신 기간 중 남편은 모교를 다녀왔다. 회사에서 점심까지 거르고 짬 내어 간 걸 보면 그날이 스승의 날이었던 모양이다. 임신 소식을 들은 선생님은 사뭇 진지한 톤으로 양육의 경험을 나누셨다고 한다. 한동안 못 느끼겠지만 아기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꽤 재미있어질 거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은 선생님의 말이 의아했다고 했다. 뭐랄까, 그 경험담 때문에 선생님에게 실망한 눈치였다.
2/ 언젠가 회사 부서의 팀장이 내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너무 아기 땐 예쁜 줄을 몰라. 실감이 안 나. 말이 통하고 반응하고 노니까 그제야 내 아이 같더라고."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나누기 전에는 존재적 의미가 덜 와닿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의 말이,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3/ 우리보다 한 해 먼저 아기를 가진 대학친구는 곧 죽어도 아기가 와이프만 찾는다며 인생의 진리를 몸소 체험한 듯 놀라움을 전했다. 역시 엄마가 필요해. 니네 애도 엄마 껌딱지지? 아빠는 엄마를 절대 대체할 수 없어. 친구의 아기는 곧 두 돌이었다. 그와 아기는 유대가 헐거웠다. 아마도 몇 해가 지나 말을 트고 공을 차는 시기가 오면 비로소 그도 아빠로서의 인생이 시작될 거다.
부모는 책임진다. 부모는 사랑을 준다. 부모는 자신의 시간과 살을 떼어내 아이의 생존을 돕는다. 스스로 먹고 입을 때까지 지켜본다. 지켜준다. 너나 나나 우리는 똑같은 사명을 가진 '부모'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동일한 태도로 아기를 돌봐왔다. '엄마'의 신성화는 우리에게 불편한 개념일 뿐이었다.
언제나 들어온 이야기지만. 아기에게는 엄마가 최고라는데, 도무지 그렇지가 않았다. 남편이 모르는 걸 나도 모르고, 너는 부모가 처음인데 나 역시 처음이었다. 내가 본능적으로 더 잘 알거나 능숙할 리 없었다. 초보 부모로서 절절대는 수준은 매한가지였다. 둘이 있다고 번갈아 잠을 자거나 쉴 시간을 나눠갖지도 못했다. 서로가 서로를 불안해했고 그건 거의 감시에 가까웠다. 저 혼자 힘들까 안쓰러워 안 자고 안 쉰 게 아니라 너 혼자 그래 갖고 되겠냐 싶어 못 잤다. 그렇게 첫 삼 개월은 같이 못 잤고, 함께 매달렸다.
한 명이 우는 아기를 안고 있으면 나머지는 노래를 부르든 종이를 구기든 온갖 소음을 만들어야 했다. 분유를 타고 목욕을 시키고 연고를 바르고 손톱을 깎고 어화둥둥 달래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씩 나은 방법을 찾을 때마다 으스댔다. 이것 봐. 내가 재웠어. 내가 해냈어! 남편은 분유를 빨리 타는 요령을 터득해 내게 알려주었고(그래서 새벽 수유 분유는 모두 그가 탔다), 비닐을 구기면 아기가 진정된다는 것을 발견해 의기양양한 얼굴로 부시럭거리는 소음을 만들곤 했다.
'말을 못 하니 내 아이 같지가 않더라'라는 감상이 낄 자리는 없었다. 엉덩이 발진의 정체를 몰라서 새벽까지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연고를 발라주던 손이, 좀 더 친절한 의사에게 가보는 게 좋겠다며 주변 소아과를 발품팔아 돌아다닌 발이, 한낮 35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아기띠를 하고 다닌 가슴이, 내 아이를 어색해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시력이 흐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절하게 지키고 싶은 내 아이는 존재 자체로 부모의 영혼을 흔들었다.
키우면서 새삼 절감한 사실이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아기는 손가락 하나 본인이 원하는 대로 까딱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손과 발, 애정과 관심이 가장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존했다. 그러므로, 완벽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토록 취약하고 불완전한 존재가 시시각각 머리와 마음을 떠날 리 없으므로 밖에서 술을 마신다거나 놀러다니는 일은 꿈 속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모 됨의 일상이었다.
이제는 남편이 왜 선생님 말에 의아했고 실망했는지 안다. 나의 보스가 자신의 자녀에게 느꼈던 한때의 어색함이 그의 무책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안다. 대학동기가 엄마를 절대 대체할 수 없도록 본인 스스로 아이와의 간격을 넓히고 육아를 방관했음을 깨닫는다. 하루 단 두 시간이라도 밀도 높은 시간을 가지면 아이는 아빠를 찾고 아빠는 회사에서 퇴근만을 손꼽아 기다릴만큼 아이에게 애정을 갖는다. 나와 남편은 육아를 할수록 가슴이 아프다. 무책임한 아빠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체념한 엄마들이, 이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현상이라며 스스로를 속여야 버틸 수 있는 현실이 자꾸만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