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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텔라 Oct 05. 2021

물건 던지는 남편

한 번 발생한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는 낙관.

남편은 된소리를 내며 욕을 했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연애를 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만데 그 사람이 욕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격앙된 그는 발 아래 쿠션을 걷어찼다. 뒤집힌 쿠션의 자수 놓인 배가 드러났다. 화병이나 컵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 정말로 다급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손 닿을 거리에 부엌 가위가 보였기 때문이다. 1년 전 에메랄드색 손잡이에 끌려서 산 가위가 이제 보니 서슬퍼런 살생 도구였다. 가위를 낚아챌 모습이 그려지자 저급한 욕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저 가위를 숨겨야 하는데, 가위를 가려야만 하는데. 그 생각 뿐이었다. 내 집에서 평생의 반려자로 서약한 나의 남편을 마주하고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패배감과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남편은 벌벌 떠는 위축된 몸을 보며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       추워?

-       당신이 저 가위를 집어들까봐. 숨겨야겠다는 생각 중이었어. 내가 비참해서 견딜 수 없어.

-       ……도대체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남편은 경멸감을 드러내더니 다시 고함을 지르고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저 머리는 분명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느꼈다. 내가 맞고 있구나. 나를 때리는 중이구나. 며칠 뒤 부부 상담을 제안하며 상담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곧장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확언하자 그는 마지못해 따라나섰고, 지금은 구에서 운영하는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 차수를 반 정도 채웠다고 했다. 다행히 연륜 있는 전문 상담사 앞에서 남편은 주눅이 들었다. 본인의 행동이 명백히 폭력이라는 객관적 명명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       차라리 그때 그 사람이 자기 머리 대신 내 머리를 때렸어야 했어요. 그러면 더 쉬웠을 거야. 사진 찍고 진단 받고 증거 남기고 이혼하고. 얼마나 확실해. 동물적인 힘 앞에 두려워해야 한다니. 멀쩡한 가재도구를 숨길 생각이나 한다니. 왜 그렇게 살아야 하겠어요. 그게 어떻게 사람 사는 거겠어요. 근데… 왜 그렇게 울어요?


나는 가위를 숨기는 대목에서부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느꼈을 공포감과 비참함이 선연했다. 그날 그 공간 그 순간의 그녀가 너무 가여워서 당장 그 집으로 달려가 그때의 그녀를 꺼내주고 싶었다. 산악용 캠핑 망치로 엄마의 허벅지를 내리찍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악 소리를 내면 냈다고 다시 같은 자리를 내리쳤다. 보드랍고 여린 살, 겉으로 언뜻 봐서는 드러나지 않을 부위를 찾아서 아버지는 엄마 몸에 망치 자국을 남겼다.


엄마의 직장 동료나 동네 사람들이 모르지는 않았다. 가정폭력이라는 이름이 범죄로, 신고 거리로 인식되지 않는 시절이었다. 방음 안 되는 낡은 빌라에서 앞집 윗집 아랫집이 모르지 않았다. 아는 체하는 것이 엄마를 두 번 죽인다고 믿었고 그건 사실이었을 것이다. 새벽까지 발을 구르고 묵직한 덩어리가 던져지는 소리와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급하게 삼킨 신음을, 모를 리 없었다. 어린 나는 공포를 뚫고 방문을 열었다. 아버지는 한 손에 망치를 든 채 볼과 턱에 핏줄을 세운 모습이었다. 독이 오른 피부 위에 불거진 핏줄이 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선을 그렸다. 그렇게 울어도 아무리 빌어도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종종 엄마를 개 잡듯 뭉갰다. 나는 한번씩 매체를 통해 동물학대를 보게 될 때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절규하고 싶었다. 맞던 엄마가 떠올라서.


D가 스마트폰을 바닥에 던졌을 때. 입술을 떨며 욕했을 때. 빌고 싶었다. 기분 나쁜 통화를 끝낸 나의 남편은 정신을 못 차렸다. 개새끼, 병신 새끼가 나를 무시해. 우지끈 턱에 힘을 줬다. 아기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돌을 겨우 지난 얼굴이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람을 때릴 수도 있겠구나, 너는. 한 손에 쥘 만한 무게와 사이즈라면, 내팽개치는 대로 나가떨어질 물건이라면. 본인 소유의 스마트폰이니 괜찮았을 것이다. 스스로 뒷감당할 만한, 그래도 사람은 아니니 괜찮다고 여겼을 것이다. 가족을 때리는 사람의 시작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너는 나의 무엇이므로 내가 너를 감당할 수 있으므로, 내 손 안에 있으므로, 다른 개입은 침투하기 어려우므로. 너는 감히 내게 저항하기 어려우므로.


나는 며칠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낸 건 아니지만, 딱히 어두울 것도 없이 정지된 표정으로 지냈다. 굳이 말하자면 온화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한동안 그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고 나야말로 자극 받고 싶지 않았다. 감정의 부유물이 겨우 가라앉을 즈음 입을 열었다.


-       너 물건을 처음 던진 게 언제야?

-       그 사람은 내 말을 도중에 다 끊어내고 무시했어. 뭣도 아닌 게.

-       화난다고 무슨 짓이든 해도 되는 건 아냐.

-       누가 들으면 내가…

-       그날 나는 전혀 몰랐던 모습을 봤잖아. 너의 새로운 모습을 보일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거고. 이제 너를 모르겠어.

-       그 사람이 빈정댔어. 기껏 신경 써서 도움을 주려고 한 일인데, 그런 대우를 받는 게 맞는 거야? 나는 화도 내면 안 돼? 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내가 지보다 어리다고-

-       그 사람이 잘했다고 한 적 없어. 넌, 남들은 하지도 못할 친절과 배려를 해주는 사람인 건 알아. 사려깊고 따뜻해. 안다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만날 수 있잖아. 상대가 거지같다고 네가 망가져? 언제부터 물건을 던지게 됐어?

-       몰라. 전에는 던진 적 없어.

-       그랬구나. 평생 한번도 나온 적 없는 모습이 내 가족 앞에서 나온 거구나. 통화 도중에 말을 끊고 빈정댄 그 사람 때문에 나와 아기가 그걸 감당해야 하고. 우리에게 배설해버렸구나.


순간의 판단과 행동의 결실을, 남탓으로 돌리는 일은 성인이 되어서는 멈춰야하지 않나. 세상은 선함과 친절함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늘 준비되어 있는가. 그렇게 세상이 준비되었을 때만 너는 선하고 친절하고 너그러워지나. 그렇다면 그게 원래부터 진짜 너의 모습이 아니지 않을까. 상황과 주변인들이 마냥 마음에 맞고 잔잔할 수만은 없다. 착한 네가 변질된 것이 아니라 네 안에 있던 무엇이 적당한 때를 만나 몸을 세우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그칠까. 더 나아갈 수 있었어 얼마든지. 다시 물건 던지는 모습을 봐야한다면 나는 너와의 삶을 긍정할 수가 없어. 불신이 시작되었으니 더 이상 일말의 가능성도 내비치지마. 내게 시작된 지금의 불안이 확신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마.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야.


무엇에까지 도달할지 모를 너를 불안해하는 일보다 결혼의 책장을 덮는 일이 내게 낫다는 . 결코 위험에 버려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D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리병을 던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에게 던진 것도 아닌데 폭력범 취급이 부당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잘한 단서들을 신뢰한다. 화가 나서 던진  아니라 던질  있는 사람이어서 던졌다는 사실. 부술  있는 사람이어서 부쉈다는 . 그때는 약했고 외로웠다고, 배신 당했고 두려웠고 돈이 없었다고. 그래서 그랬던 것이라며 그런 대로  시절의 아버지를 측은한 마음으로 이해하려 했다.  이해는 무력하게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날의 아버지, 거기까지다. 바로잡을  없어 흘러가버린 그날, 거기까지다. 지금의 내 삶을 포기하는 이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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