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스텔라 Oct 22. 2022

시위 : 일상의 불편과 일평생의 불행 사이

빠른 것들 투성이인 이 세상. 누군가에겐 더뎌도 너무 더디게 흘러간다

- 처음에는 괜찮았어. 그냥 넘어갔어요.

  그런데 이게 끝나야 말이지.

- 6개월이 지나도록 이게 뭐하는 짓이야,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 시위 때문에 지각한 사람들 중에는 직장에서 잘린 사람도 있대요!

- 미쳤어. 보수적인 회사에선 그럴 수 있겠다

- 어떡해...잘린 사람들 억울해서...

- 시위 다 좋다 이거야, 근데 미리 알 수는 없어요? 열차에 에어컨이나 좀 빵빵하게 틀어주던가.

- 미치겠어 아주 그냥!

(2022/9/20)


어째서 반년 넘게 이 짓을 해야만 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 속한 팀에서는 그랬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면전에 쌍욕을 퍼붓는데도 기어이 시위를 감행하는 장애인들의 절박함이 무엇인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감히 비장애인들을 불편하게 만든 죄만이 힐난의 대상이었다. 지하철 시위 때문에 불가피해진 지각으로 해고되었다는 사람들은(해고의 진짜 맥락은 모르지만, 그 말이 사실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으나) 비장애인이자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리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불편, 그러므로 내가 겪을 수도 있었던 고통만이 체감의 범주에 있었다.


내 아들 로아는 목청이 좋았다. 태어나자마자 그랬다. 산후조리원의 모든 신생아가 우는데도 유독 한 목소리가 튀었고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한자리에서 식사하던 산모들이 웃었다. '로아, 우는 소리 하나는 확실하네요.' 신생아 딱지를 뗀 후에도 고함 지르고 온몸을 비틀며 발악하는 일이 잦았다. 에너지가 대단했다. 지하철 열차를 타던 중 로아의 끝없는 소음이 눈치 보여서 중간에 내려야 했을 만큼 우리는 매번 곤혹스러웠다. 왜 그래? 너 뭐가 불편해서 그러는 거야? 우리는 자다가도 걷다가도 로아를 내려보며 묻고 또 물었다. 자세를 고쳐 안아보았다가 뒤로 업었다가 쌀과자를 쥐어주었다가 빨대를 물려보기도 했다. 손가락을 까딱이며 산만한 동작을 보여주었고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영상을 틀어주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난동을 동반한 짜증은 로아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는 대신 한 단어 한 단어를 신중하게 쥐어짰다. 말을 해줘야 엄마 아빠가 알아. 말을 해 주면 엄마가 도와줄 수 있어. 우리는 로아에게 귀 기울였고 가만히 마주한 채 기다렸다. 그러면 아이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발음으로, 원하는 단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로아가 단어를 갖기 시작하고부터 우리에게는 협상이라는 것이 가능해졌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내어놓고 우선순위를 정했다. "바람이 차다. 미끄럼틀 그만 타고 들어가자. 대신 달콤한 요구르트를 줄게." 로아가 고함과 난동을 멈춘 이유는 간단했다.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소통이 결과로 성실하게 반영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동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리를 괴롭힌 난동과 고함은, 실은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로아의 최선이었을 뿐이다. "나 불편해요, 어떻게든 제발 도와줘요."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 신속하게 세련되게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나의 삶만 나아지지 않는다면. 내게 절박한 변화와 서비스만 유독 진화에 굼뜨다면. 모든 것이 빠르고 간편하게 가능해진 세상에서 나는 그 흔한 대중교통 하나 이용하지 못하고 집에 갇혀 있어야 했다면. 그게 내가 태어나자마자 겪은 평생의 삶이었고, 투명인간이라는 듯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면. 단지 움직이고 단지 허기를 채우고 싶었고 사람답게 사회 활동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매번 혐오와 불편의 시선을 당해야 한다면. 이런 식으로 숨 쉬는 날들을 '벌 받듯' 살아갈 수는 없는 걸 깨닫고야 말았다면.


덜컹이는 유모차를 꽉 붙들어본 사람은 안다. 깨어진 보도블럭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손잡이에 억지로 체중을 싣고서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았을 때의 안도, 그리고 방금 충분히 잘못될 수 있었다는 공포. 모두가 태연하게 걷는 평범한 길 위에서 홀로 경험한 이 치명적 상황에 대한 설움도.

- 자칫하단 바닥에 아기 몸이 갈릴 뻔했어. 아래 차도로 엎어질 수 있었어.

신발굽으로 디딜 땐 무심코 지났을 보도블럭 위에서 나는 어떠한 안전 장치 없이 벼랑 끝에 놓여진 기분을 느꼈다. 바퀴에 의지하는 걸음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는 보호자이고 바퀴를 굴러가게 하는 사람이지만, 그리하여 두 손 두 발에 힘을 싣고 바퀴를 바로 잡는 일이나마 할 수 있었지만, 홀로 바퀴를 굴리는 인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차하는 순간에 짓이기고 부러져 일을 그르친다는 생활형 공포를 느끼면 이 세상의 무심함에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 이까짓 보도블럭에 걸려 다치고 죽어봤자 아쉬울 사람이 나와 내 가족일 뿐이라는 현실이 외로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도 여전히 같은 길 위에서 나와는 전혀 무관하게 평화로운 행인들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유모차를 끄는 비장애인이 느끼는 현실 공포이자 우울감이었다. 그럴 때면 또 허망하게도, 차 없는 길, 조경이 정갈하고 반듯한 길을 오가며 안전하게 육아하는 삶이 궁금했다. 아기가 넘어질 걱정 없는 산책을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은 어떤 느낌이려나. 넓고 깨끗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도 너비가 낙낙한 인도가 펼쳐지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겠지. 매끈한 길 위에서 유모차는 힘들이지 않아도 굴러갈테고.


"사람 다니는 길을 이 따위로 방치해? 아주 애를 낳지 말라는 거지."


걷지도 말라는 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자가용 없는 보호자는 아기랑 바깥 바람도 쏘이지 말라는 건가, 낙담했다. 반듯하게 관리되는 동네에 살 처지 안 되면 아기를 키우지도 못할 세상이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평범하게 산책을 못 해? 그렇게 한참을 빈정거리며 이 지역 관할 부서는 대체 어디냐며 욕을 했다. 욕으로 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서러웠고 무서웠다. 유모차 하나 안전하게 굴리지 못할 주거 환경에서 육아 정책이 어쩌고 저쩐다느니... 아이 키우면 약자가 되는 이 꼴같잖은 도시에서 인간 존중은 개뿔.


6호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공항철도로 환승하는 길에는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만 펼쳐진 구간이 있다. 뭣 모르고 유모차를 끌고 나간 날, 나는 온 길을 되돌아서는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탄 유모차는 총 무게가 15키로 이상 나간다. 사람을 태운 채 들어올리라고 설계된 것이 아니다 보니 유모차를 들고 좁은 계단을 이동하는 것은 위험했다. 아이를 가슴에 안고 다녀도 무게 중심이 삐걱대 계단을 오르내릴 엄두가 안 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가용이 있거나 매번 택시를 거리낌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런 심플한 삶이 아니라면 육아 기간 동안 거리 위에서 난처함에 떨고 절망하고 공포를 느끼는 상황이 반복된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광화문역에서 우두커니 서 절벽같은 계단을 내려다 보거나 올려다 보면서 정말 너무하다고 혼자말을 했다. 이러니까 혼자 육아하는 사람이 미쳐나돌지. 당장이라도 침을 뱉고 싶었다. 혼잣말로 쌍욕을 했다.


내게는 함께 육아하는 파트너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다. 감사하게도 그렇다. 남편에게 감사하기보다는 혼자 키우지 않아도 되는 나의 컨디션에 감사한다. 남편 당신이야 네 아이니까 당연한 거고. 개인에게 감사할 일은 아니다. 소중한 사람을 소중하게 지키는 내 인생의 과정과 현재의 삶, 이 자체에 감사한다.


자주 열어보는 네이버맵에는 저장해놓은 별표가 가득하다. 아이와 가고 싶은 곳들이다. 한번씩 작정하고 택시를 타거나 자가용이 있는 친구가 친절을 배풀 때 우리는 묵혀둔 리스트를 수행하곤 했다. 매번 택시에 의존할 수도 자가용을 보유하고 있지도, 무엇보다 다른 조력자가 상시 곁에 있지 않은 고독한 양육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바삐 변화하는 세상을 몸소 느낄 수 없는 제한된 인생, 새 공기를 마시고 자유롭게 걷고 친구를 만나는 것이 거세된 육아의 삶은 정말이지 너무 흔하다. 이러니까 독박 육아하는 사람이 미쳐나돌지. 당장이라도 침을 뱉고 싶은 대신 나는 매일매일 욕을 달고 산다.


출근길이 늦어지면 초조하고 짜증나는 거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너무나 잘 안다. 조급한데 피곤한데 우울하기까지 한 출근길의 느낌, 너무나 잘 안다. 당장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고 누군가가 아침부터 메시지를 보내 일처리를 닥달하고 지각할까봐 쫄리는 그 기분 얼마나 지긋지긋한지도, 너무나 잘 안다. 누군가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인생의 경험과 '출근길에 늦으면 짜증나는 기분' 그 자체가 인생 전 구간에 허락되지 않았다. 평생 그게 무엇인지 알 턱이 없었다. 세상은 그들에게 더뎌도 너무 더뎌서 아마 죽을 때까지 살아 숨쉬는 것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눈치보고 민폐되는 일일지 몰라서 초조하고 무섭다.


아무도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가 왜 이렇게까지 길어지는지 관심이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돌봄을 맡긴 실수 혹은 사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