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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도림 Jul 28. 2020

여태껏 들어온 말

당신은 여성스러움, 남성스러움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넌 여성스럽지 않아, 여자가 요리를 잘해야지, “싫어요, 안돼요.” 의사 표현 확실히 해야 해.
 
이 3가지는 필자가 살아오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기장 많이 듣고있는 말들이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견고해졌었고 이 생각에 갇히기는 굉장히 쉬웠다. 꽃무늬와 레이스가 달린 옷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여성스럽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설거지를 하면 시집이 야기로 연결되는 게 익숙했다.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하지 않아 오해하는 사람들도 태반이었고 곧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말들로 답변을 받았다. 나에게 악의가 없어 보이는 타인에게 웃으며 대화를 하는 것은 그와 같은 호감이 아닌 당연한 예의가 아닌가. 이해할 수 없었다.
 
 
 
•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
 
학창시절 교양 수업을 들으며 교수님이 한 질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성스럽다’라는 말과 ‘남성스럽다’라는 말을 듣고 각각 떠오르는 이미지를 한 명씩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원피스를 입고 사뿐사뿐 걷거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여성 혹은 마른 몸매의 여성이 요리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남성스럽다는 표현은 근육질인 남자가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나 거친 모습을 보여줄 때가 떠올랐다. 더하여 용감하고 망설임이 없는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 당시에 교실에 있던 학생들은 첫 번째 질문에 꽤 오래 이어서 답을 했다. 레이스 치마, 분홍색, 애교, 사근사근한 눈웃음, 몸가짐을 조심함, 화장, 마른 몸매, 꽃무늬, 눈물, 하얀 피부, 긴 생머리, 연약함 등으로 굉장히 다양했다. 남성스럽다는 것에는 강인한 힘, 근육, 낮은 목소리, 구릿빛 피부, 짧은 머리 등이었다. 교수님은 여성에게 붙이는 말에 외적인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이 느껴지느냐고 반문하셨고 이 자체가 큰 충격이었다. 나 자신조차 여성스러움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단순히 타고나는 성(性)이 가진 차이인데 이게 특징이 된다고 해서 불편할 이유가 무엇인가’로 종종 반박하기도 한다. 이 질문에 답이 있다. “여성은 야리야리하고 작고 마른 것이 특징인데 이것을 말로 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인가?”와 같다. 남자의 경우로 바꿔서 생각해도 같다. 각자의 외적인 부분에 대한 강요 아닌 강요는 누군가에게는 폭력과 의무감으로 다가간다. 또한 그 이미지는 생각보다 큰 파장효과를 동반한다.
 
 
작고 개인적인 생각은
곧 사회적인 결속력을 얻는다.
 
 
 
•언어의 영향•
 
그래서 이와 같은 단어는 단어 하나로서 끝이 아니다. 즉 다른 상황과 타인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 여성스러운 여성에 익숙한 사람들은 여자에게 성고정적인 역할을 주기 쉽다.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 여자애가 왜 그렇게 무뚝뚝해”와 같이 응용된다.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남자가 이거 하나 못 드니. 남자는 우는 거 아니다. 남자가 무슨 요리를 하느냐?” 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매체에서도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을 큰 의심 없이 보여주는 것이 여자와 남자의 이미지를 고정하기 쉽다.
 
2019년 「성차별 언어 접촉 경험의 성별 효과: 감정, 인지 그리고 행동」이라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논문을 보면, 남성과 여성 모두 이러한 성차별언어를 들었을 때 불쾌감을 가장 많이 느꼈다고 한다. 여성의 2순위 감정은 분노였으며 남성의 2순위 감정은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는다(아무런 느낌 없음) 우세했다. 성별 차이가 가장 큰 감정은 바로 죄책감이었다. 이 결과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여성은 평균 0.008인 반면, 남성의 평균은 0.039로 이것은 이 분석에서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유의미하게 큰 차이라고 한다. 분석지들은 이 죄책감이 성차별이념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가부장적 성별 고정관념에 잘 맞추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언어의 억압 속에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죄책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주위에서 듣는 말들이 나를 감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틀에 갇혀 얌전하지 않아서 여성스럽지 않고 애인이 근육질이 아니고 소심해서 남성스럽지 않다는 평가를 듣는다면 이 자체가 너무 우습지 않은가.
 
 
“여자 같은~ 남자 같은~”으로 시작하는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그리는 이미지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며 전 세계는 바뀌고 있다.
 
 
사람들이 예민해진 걸까? 그렇지 않다. 과거에는 익숙해서 둔감했고 이제는 그렇지 않은 차이일 뿐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언어가 가진 힘은 너무나 크다. 이제껏 행해져 오던 문화를 담기도 하고 미래의 방향성도 결정한다. 다시 말해 한 단어가 깊게 뿌리박혀있으면 무의식에 다른 부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래서 이 오피니언은 성별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는 글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한 사람이라도 무의식에 그려둔 이미지를 삭제했으면 하는 바람이자 사회에 발맞춰 나아가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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