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Answer Jun 09. 2020

NO SIDE!

스포츠는 인간의 삶이 묻어 있는 문화다

NO SIDE!


럭비 경기의 종료 구호다. 승리를 위해 치열하게 다투다가도 이 구호를 들으면 양 팀은 서로 친구가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불과 1분 전만 해도 서로 부딪히고 잡아당기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격렬하게 저지하고 상대방은 그 거칠고 끈질긴 수비망을 뚫고 득점을 위해 혈투에 가까운 몸싸움이 일어났지만 NO SIDE!란 소리로 즉시 친구가 된다니. 

상대 수비의 거친 태클에 맞서 공격하는 것이 바로 럭비의 매력이다.


사실 믿지 않았었다. 럭비 경기를 시청하면서 경기 후 양 팀 선수들의 악수와 포옹, 대화를 보고 있어도 감정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믿게 되었다. 내가 이 거친 몸싸움 경기를 한 후 심판의 구호를 직접 듣게 되면서.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었다. 말로만 듣고 눈으로만 봤었던 그 자리에 내가 직접 있어보니까 조금 전까지 상대방에게 향한 나의 열기는 어느새 서로에 대한 온기로 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 순간 뭔가 알 수 없는 찌릿함이 왔었다. 


경기 후 회식을 하면서 럭비선수 출신 형님께 이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어. 럭비는 아주 거친 스포츠이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싸움이 될 뿐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끝난 후 상대방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서로를 아껴주는 거야!"

치열한 경기 후 양 팀 선수는 오랜 친구처럼 가족을 소개하며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문화다.

너무 멋진 말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스포츠 자체에 묻어 있음이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스포츠를 하면서 상대방을 이기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승리하길 원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지도자들의 폭언과 폭력, 성추행과 성폭력, 승부조작, 비정상적인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등이 스포츠가 지닌 본질적인 가치 추구를 가로막고 있다. 스포츠 속에는 인간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끔 부추긴다. 이를 우리는 승리지상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럭비는 경기 후 승패에 상관없이 서로가 퇴장할 때 일렬로 서서 맞이한다. 이로써 서로는 적이 아닌 동료가 된다.

100 여년 전 영국의 어느 축구 경기에서 한 학생의 돌발적인 행동으로 탄생한 이 스포츠가 애초부터 이 같은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럭비가 추구하는 정신은 시간이 흐르면서 럭비를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가치와 의미가 더해지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호와 규칙를 만들고 적용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축적되었을 것이다. 그게 럭비의 문화가 되었고 한 사회에 뿌리내려졌을 것이다. 


스포츠는 문화다.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빚어낸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단순히 승리만을 추구하고 그 결과에 따른 경제적, 정치적 혜택이 전부인 수단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