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하거나 재단할 수 없는 타인의 삶에 대하여.
사람은 아주 얕게 알았을때 가장 똑똑한 척을 한다.
아이쿠야. 아니다. 이 글의 본론에도 들어가기도 전에 나는 첫문장에서 이미 내가 쓰려는 글과 모순된 표현을 써버렸다. 나는 사람을, 타인을, 심지어 나조차도 어떠하다고 고정지어 말하는 것을 경계하려 한다. 아니, 적어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
학부에서 어렵다고 친구들이 피하는 수업만 골라듣고 그 수업들에서 좋은 성적을 여러차례 거두고서 나는 내 전공에 대한 이해가 아주 높다고 생각했었다(에필로그에 이어 다시 얘기하지만 나는 법학이 원래 전공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려운 레퍼런스를 찾아 읽고 탐독하는 모습에 스스로 '멋짐'을 느꼈으리라. 각주에 있는 참고문헌 하나를 더 찾아보고 수업에 참석하니 당연히 남들보다 1g정도 더 아는척 할 수 있었던 것인데 사리 분별하지 못하고 나는 내가 이 전공에 '재능있는 학부생'이라고 착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읽어 발췌했던 것들은 누군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쌓아올려 만들어낸 지식의 결정체였고, 나는 그 결정체를 혀로 살짝 핥아 맛만 봤던 수준인 것이다. 나는 그 결정체를 빚어내려 고민이나 고생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웃기는건 마치 그 결정체 몇 개를 혀로 핥아봤다고 내가 마치 그걸 만들어내는 방법을 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나는 뛰어난 연금술사였다. 사실은 흙을 금으로 만드는 방법은 혼자 상상속에에서만 간직한 채로. 얕은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학부생의 아주 큰 착각이었다.
육아도 그랬다. 내가 아이 하나를 출산하고 한 돌쯤 키웠을 때인가. 참... 지금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을정도로 '육아박사'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사람이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애는 이렇게 키워야지. 저렇게 키우면 안되지. 참 혼자 생각도 많이 했다(다행하게도 이를 입밖으로 내는 불상사는 없었던것 같다). 그런데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한 엄마들을 자주 만나면서 느낀 것은,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누워 뒹굴기만 하던 그 조그만 아기들에게도 신기하게도 태어날 때부터 '기질'이라는게 있었다. 이것은 양육방식과 환경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냥 그런 것이었다.
결국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겪은 것'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며 규정짓고 정의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왜냐면 그게 편하니까. 하나로 규정지어두고 더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더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나 번번이 그 믿음의 세계는 깨어졌고, 어쩌면 나는 그게 더 잘 깨어지도록 더 단단한 벽을 쌓지 않고 그냥 두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변호사를 하며 수많은 의뢰인들을 만난다. 아무래도 형사전문 변호사다보니 법을 위반하여 온 의뢰인을 많이 만난다. 심지어 요즘은 학폭사건이 늘어나 어린 의뢰인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가끔 의뢰인 중에 사건의 경위를 말하기 앞서 머뭇거리며 이런 말을 하는 의뢰인도 있었다.
ㅡ "제가 정말 나쁜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혹시 변호사님께서도 제가 나쁘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됩니다."
내가 아마 스무살에 소년급제하여 변호사가 되었다면, 나의 삶의 나이테가 고작 그정도였을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만나는 의뢰인들을 만나기도 전에 각각 "어떠어떠한 의뢰인"이라고 규정지었을 것이다. 아마 내 의뢰인 리스트에 큰 카테고리로는 나쁜 의뢰인, 더 나쁜 의뢰인, 젤 나쁜 의뢰인으로 구별해두지 않았을런지... 라고 까지 써놓고 생각해보니 그래도 내가 이정도로 전두엽이 덜 발달하지는 않았으리라 ^^;;; 여하간에 '정의하기와 규정짓기'를 끊임없이 벗어나고자 하는 지금의 나는 의뢰인을 무엇이라 규정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다. 내 앞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이 있고, 나는 이 사람을 절실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죄를 저지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다니, 아마 법조계 밖에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아연실색할만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나, 나는 변호사이고 잘못한 사람이 잘못한 만큼의 벌만 받게끔 조력하는 형사변호인이다.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법조 시스템이 오작동하지 않게끔 불을 밝혀 어두워 보이지 않는 곳을 보이게끔 하는게 내 사명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인정하는 사건을 진행할때는 의뢰인에게 자신의 '일대기'를 한 번 작성해달라고 요청드린다. 이만큼 큰 일을 겪었으니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의미도 일부 있지만, 사실은 그냥 내가 의뢰인을 이해하고싶어서이다. 내가 의뢰인을 이해해야 수사기관이던 법원이던, 때론 피해자나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 마음을 잘 이해해주시는 의뢰인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되지 않는 서류'라고 말씀을 드려도 정말 정성을 들여 구구절절 잘 작성해주시는 때가 있다. 그러면 나도 의뢰인을 이해하게 된다. "이 사람은 '000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만 규정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구나. 내가 그 이야기를 꼭 검사님께, 재판부에 해 드려야지." 하면서.
의뢰인들에게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결국 이 모든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언젠가 우리의 일이 AI에 의해 대체될지도 모르겠지만, '법감정'이라 하듯 나는 아직까지 법에 감정과 온도가 있다고 믿는다. 또 내가 하는 일에도 분명 온기가 있다고 믿는다.
법과 공소장은 00법 위반죄로 의뢰인을 규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의뢰인도 결국 누군가의 부모이고 총천연색의 꿈을 품고 살아가고자 하는 사회 구성원이리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