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병들게 하는 건, '꿈'이었다.

by 오름

05.


내 인생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모든 일이 의지만으로 가능하다 믿은 시간들을 배척하듯 힘이 없었다. 결국 나를 최선을 다해 인정하고 ‘꿈’이란 글자의 거창한 의미를 지워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건강상의 이유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셀프 백수가 되었다. 사실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목표가 뚜렷했던 터라 일을 그만둔다는 의미의 ‘퇴사’는 아니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재도약하기 위한 ‘퇴사’였으나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퇴사 이후 병원을 다니며 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덜 해지니 하루아침에 새사람이 된 듯했다.

내 기분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설레기까지 했다.


몇 개월이 지났다.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노트북을 켜 ‘이력서’라는 것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게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반증이라도 되듯 나름의 뿌듯함까지 느껴가며 이력서를 작성했다. 입사를 원하는 회사의 목록을 작성한 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내기 시작했다. 비율로 따지자면 열 곳 중 일곱 곳에서 연락이 왔으며 면접을 보고 합격하기까지는 그중 다섯 곳이 내게 기회를 주었다. 한데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모두 제 발로 도망쳐 나왔기 때문이다.


종로에 있던 한 설계사무소에서 겪었던 경험담을 적어보려 한다.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어 고민하지 않고 써두었던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고, 내 기억으로는 다음 날 연락이 왔었던 것 같다. 면접 날짜가 잡히는 순간, 여기서부터 고질병이 나를 괴롭힌다.


‘내가 간다고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내가 붙으면 잘 다닐 수 있을까?’

‘또다시 기회를 발로 차고 도망 나오면 나는 한 번의 패배감만 더 느낄 뿐일 텐데.’

‘어차피 도망 나올 텐데 차비 아깝게 면접 보러 가야 할까?’

‘안 될 것 같은데. 못 버틸 것 같은데.’

좀 더 심한 생각까지 하지만 차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멘털이 약하다. 두부보다 무르고 미세먼지처럼 탁하다. 모든 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은 내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마음을 달래고 애쓰고 타일러도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이런 고민들로 면접 전날까지 잠을 못 잔 채로 새벽을 맞이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너무 웃긴 것은 그렇게 고민을 해 놓고 막상 면접을 보러 가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나도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될 대로 되라지. 안 가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면 이상하게도, 면접관들은 후한 점수를 주시는 것 같다. 당당해 보여서일까? 설마 아니겠지.


내가 종로의 한 설계사무소를 콕 찍어 이야기하는 것은 대표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아서다. 첫 번째 면접에서 뭔가가 부족하다 느끼셨는지 또 한 번의 면접을 권하셨다.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하셨는데 맥락은 비슷했다. 스스로 잘하는 부분이 무엇이고, 얼마만큼 잘할 수 있는지를 물으셨는데 내 대답이 썩 맘에 들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자네는 왜 잘할 자신이 있다고 딱 말하지 못하는 건지. 확실한 답이 듣고 싶은데.”


‘어휴, 잘 못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도망갈 것 같거든요.’라고 속으로 대답을 했다.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나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공황장애로 약을 복용 한 이후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얘는 아파서 그래’ 하는 시선이 너무 싫었다. 뭐만 하면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들먹이는 것이 싫어 열변을 토해가며 상관없음을 피력했고 그럴수록 더 자주 들어야만 했다. 언젠가부터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심장이 요동치고 식은땀이 나며 호흡이 거칠어지는 증상을 겪었다. 심한 경우에는 내가 무슨 말을 했고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집중력이 급격히 저하되며 오는 현상 같았다. 상황이 이러니 첫 출근하는 회사에 내 상황을 얘기하며 배려를 부탁드린다는 말은 더더욱 힘든 일이었다. 발을 빼며 스스로 포기하는 편이 빨랐고 그러다 보니, 첫 출근하는 순간 몰리듯 치달았던 나는 스스로 도망 나오기 일쑤였다.


불안함과 부담감이 나를 짓눌러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였다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 도피처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이런 바보 같은 짓을 2년 가까이했고 어느 날은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는 치졸한 뿌듯함을 느끼다가 어느 날은 ‘결국, 이럴 줄 알았어’ 하는 절망에 빠지는 모순된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 이면엔 가족에게 뭔가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된 행동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나를 피로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피로감과 스스로 만든 좌절감에 우울증이 계속되어갔다.


가족들은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직접 말하기 전까지 몰랐다. 그래서 나의 입사와 퇴사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번에는 진짜 다닐 줄 알았는데 또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어설프게 둘러대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서야 패닉 상태가 돼서 그 상황을 견뎌내질 못하고 도망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의 말이 내 마음에 자리 잡았다.


‘어쩌다 그런 몹쓸 병에 걸려서...’


엄마에게 공황장애는 ‘몹쓸 병’이었다. 나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몹쓸 병. 언젠가 호기롭게 극복하는 내 모습을 꼭 보여주리라 다짐했었으나, 은은하게 뿌리 깊게 박힌 이 몹쓸 병은 ‘극복’이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복된 피로감과 무기력 속에서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에이포 용지에 생각나는 것들을 솔직하고 거침없이 써 내려가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누군가에게 보일 것도 아닌데 생각나는 것들, 마음속의 말들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 갈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단어와 문장을 정리하여 한 글자 한 글자 느릿하게 적어갔다. 그러다 세 줄을 넘기지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마음에 종이를 구겨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그러다 내 상태를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그림과 약간의 글로 무언가에 빗대어 나를 표현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또 다른 꿈을 갖게 했다.


날 병들게 했던 꿈이, 또 다른 나를 꿈꾸게 하고 있다. 인생의 어떤 부분을 단정 짓기엔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 무궁무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을 기억해야겠다.


그림 4.JPG

빛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매었다.

가늠되지 않는 거리에 작은 점이 있어 그쪽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흰 점은 점점 커져갔고 나는, 기대로 온몸을 채워갔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함정에 빠진 내 모습이 눈을 가득 메웠다.


꿈을 좇던 나를 죽이려던 건,

다름 아닌 꿈이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었고

이곳은 함정이 아닌, 내 공간인 척.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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