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매우 그러함, 매우 그렇지 않음 사이가 너무 좁다.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넘어가던 작년 초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꾹 눌러 담아 멀찌감치 던져두곤 회색 먼지에 초록 곰팡이가 피도록 방치해 두었던 내 안의 못난이가 불쑥 새어 나와 결국 남편의 눈에 발각되고 말았다. 그날의 심정은 ‘좀 더 잘 숨길 수 있었는데’와 같은 미련함보다는 ‘될 대로 돼라’는 자포자기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며칠 뒤 남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서울 청담동의 한 한의원이었다.
‘하, 결국 병원을 또! 왔구나’라는 생각에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밀당은 고사하고 붙을 때마다 지는 싸움에 전투력과 의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일전에도 약 2년 가까이 양약을 통한 우울과 강박, 공황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다녔고 생각보다 일찍 약을 끊게 되어 ‘내가 이겼다!’라는 자만심에 우쭐하는 날이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난날의 내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병원에 발을 들이는 내 모습이 뭐랄까, 패잔병처럼 느껴졌다.
흰색은 종이요, 검은색은 문자이니라.
수능도 아닌데 커다란 종이에 나에 대해 묻는 질문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대학 병원 가정의학과를 처음 갔던 그날의 그 질문지보다는 현저히 적은 분량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체크해 나갔다.
매우 그러함 / 그러함 / 보통 / 그렇지 않음 / 매우 그렇지 않음 / 잘 모르겠음
기분이 나빴다. 삼십 년이 훌쩍 넘는 애증의 시간 속에 고생의 훈장이라 자부하는 아픔이 단 여섯 개의 제시어로 분류되어 군더더기 없이 설명되어진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동시에 간략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나 자신도.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앞서 말했지만 나는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간단하게 설명해야 할 것도 대하 서사극으로 만드는 재주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무슨 의도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곧잘 웅덩이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생각을 정리해 글로 쓰는 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설문지에 답변했는데요.’
앞에 앉아있던 상담사의 어색한 웃음이 내 대답이 어땠는지 설명해 주는 듯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내 상태를 읊어주던 선생님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온화한 표정과 전부 괜찮아질 거라는 안정적인 목소리와 제스처는 나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의사가 아니라 전형적인 사기꾼처럼 보였으니까.
내 상태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조금 더 진화되고 있었다. 강박과 우울은 역시나 였으며, 얼굴 주변의 과하게 집중되어 있던 열은 스스로 갱년기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 나 갱년기 인가 봐’라고 했을 때 엄마는 비웃음으로 일관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이없으셨을까 싶다.
결국 3개월 분량의 한약과 일주일에 한 번 침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기도 화성시 신동탄이라는 생경한 지역에 거주할 때였고, (25년 가까이 인천에 거주했던 터라) 멀미로 인해 버스를 타지 못하는 나로선 서울에 가는 일이 여행이라 불려도 과하지 않았던 때였다. 이 당시의 나는 전업주부도 아닌 것이 하는 일은 딱히 없는 반 백수였기 때문에 전철을 타고 어딘가를 간다는 사실이 조금 설레게 다가왔던 때였다. 내게도 할 일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잠시 잊게 만들기도 했다. 그만큼 외로웠고 한량이었으며 우울했다.
‘치료가 될까? 그다음엔 치유가 될까?’
치료의 시작점에 선 나는 앞이 그저 검은색으로만 보였다. 어둑해진 길이 검은색으로 뒤덮여 내 위치가 분간되지 않을 때 내 손을 잡고 어둠을 함께 했던 남편은 토요일마다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침을 맞으며 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 나를 묵묵히 기다리고 안아주었다. 그의 포옹은 언제나 적당히 따뜻했다.
am. 6:4
회색 어스름 빛이 부스스한 너를 비춘다.
눈을 감고 축 처진 너의 뒷모습을 두 팔로 휘감는다.
미지근한 널. 잠시 동안 붙잡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