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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Aug 15. 2021

장례식 후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한겨레두레협동조합채비 / 김상현 님


저는 한겨레 두레 협동조합(공간 채비)에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상현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모든 월급쟁이들이 다 그렇게 하듯이 기업을 다니면서 아이를 낳고 조그마한 집이라도 장만하고 제 젊은 시절을 보냈지요. 그래서 굉장히 좋은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만 자본주의 기업이라고 얘기하죠.

자본주의 기업이 가지는 그런 한계가 상당히 많이 있다는 점들이 항상 저를 괴롭혔어요. 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사람을 점점 도구화되는 이런 것들이 마음이 많이 아팠죠. 그래서 현재 대안경제에선 인간의 탈을 쓴 경제활동 인간 중심의 경제 활동을 대안 경제로서 이행하고 있습니다.






장례식 후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

장례를 치른다는 건 누군가를 보내는 일이잖아요. 추모를 해야 되고 그분과의 이별을 해야 되는 과정인데 '우리의 장례식이 도대체 어떠냐' 고 한번 생각해보면 손님 접대하느라고 바쁜 거죠, 정신이 하나도 없죠.

그리고 그날은 쓰러져 잘 수밖에 없고 다음날 새벽에 되면 발인을 해요. 4~5일 지나 집에 와서 한숨 쉬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구나' 이 생각이 비로소 드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그렇게 해서 잊어버려야 되는 일이야'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바빠서 잊는 거야' 우리가 고인과의 이별, 고인과의 추모, 이제 그분은 더 이상 이승에 계시지 않고 저쪽 편으로 가시는 분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소중한 순간을 '저의 다른 사람들은 만나면서 보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반성이 있죠.


딸만 있는 집에서 외삼촌이나 작은아버지가 상주를 대신하면서 딸은 상차림 하고 왔다 갔다 하면서 심부름하는 일로 보낸다는 얘기도 나오고. 어떻게 그런 성적 불평등 장르가 있을 수 있나, 이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들에 대한 것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례가 아닌 여명기부터 준비해야

추모 중심의 장례를 하려면 어떤 분의 여명기라고 합니다. 살아서 활동을 하실 때는 그런 게 별로 필요 없어요.

근데 '임종기' 또는 '여명기' 이제 몸도 마음대로 못 움직이는 시기가 옵니다. 그럴 때 장례식만 걱정하고 '조문객은 몇 명 올까?'라고 고민할 것이 아니라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 반추하고 해석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됐던 것이 더 소중했던 것 같아요.

저희는 그걸 '채비'라는 말을 써요. 준비하는 시기에는 가족이나 좋은 사람들과 화해를 하고 또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더 해 보고 '가족과 화해하세요, 기억을 더 만드세요, 기록을 남기세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과거에는 (화해를) 못 했다 하더라도 그때 화해하고, 그때 정리했던 내용을 가지고 의식은 간소하나 추모는 깊이 있는 그런 장례를 치르고 그 기억과 기록을 가지고 남은 유족들이 삶을 더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이런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이 사회에서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례가 있다면

저희는 그간 수없이 많은 장례를 치러 왔어요. '시장의 질서를 바로 잡아 보자' 해서 원가공개를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활동들을 해 왔는데 한 사례를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겨울이었어요, 그분은 해외 거주하는 자녀였어요. 상담을 하다가 바로 그날 장례가 발생했는데 아버지 평소에 유지가 '조용히 깨끗이 갔으면 좋겠다'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조문객을 모으고 여러 가지 준비해야 될 첫날

이분들은 온전히 가족이 다 모여서 옛날 앨범을 다 정리했어요.


사진을 정리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잖아요
과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저희가 '사진을 정리해서 주세요'라고 했거든요, 영상을 만들어 틀어 드릴게요. 고인이 쓰시던 유품을 함께 진열해놓고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게 있으면 좀 주세요'. 가족들이 모여서 사진과 유품을 정리해 줬어요.

(고인께서) '어떤 음악을 좋아하십니까?' 하니까,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를 아버지가 참 좋아했습니다"

그런 걸 가지고 저희가 젊었을 때 그분의 삶을 찍은 영상을 편집했죠



그 다음날 한 10명가량의 손자, 형제 이렇게 와서 가족들마다 유품을 보면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아들이 (추모사를) 이야기를 하는데 과거에 기억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울기도 하면서 진행되는 거예요. 


손주들이 나와서 추모를 하죠.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학원에서 올 때 비 오는데 우산 들고 30분 기다렸는데 저는 할아버지 임종을 못 봤어요' 


딸이 나와요.

'아버지 담배도 피우지 말라고 해서 일찍 돌아가셨잖아, 아들만 좋아하시고 딸이라고 나는 맏이인데 이렇게 가시는 법이 어딨어요 아버지'


딸한테 아들이 이야기를 해요.

'아버지는 누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 (고인의 유품 중에서 플루트를 부는 상이 있었어요, 딸이 과거에 받은 상) 그걸 보이면서 '아버지가 이 볼품없는 이 조각상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누나는 알지 못한다 이것만 끝까지 가지고 돌아가실 때도 이걸 가지고 돌아가셨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추모사가 끝나요.

그런 얘기를 한 면서 기억을 나눠요, 각본에 없는 이야기들이에요. 그걸 보면서 저희도 같이 울었어요, 그러면서 이거야말로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확신했죠. 이렇게 추모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서로 화해했잖아요. 화해하고 살아있는 사람이 기억하고 우리 그런 기억들을 만들어 내고, 그런 것들이 함께 나누어지고 그런 장례식을 만들고, 그런 여명기를 만들자. 그게 저희가 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동영상에서 확인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PzwjACdYprI&t=75s


https://www.youtube.com/watch?v=Bc749QHXV8A&t=33s





본 콘텐츠는 경기도 1인 크리에이터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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