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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사이시옷 Oct 26. 2021

마왕 신해철 7주기 추모 영상 후기

REGAME! 프로젝트



마왕 신해철 7주기 영상  (REGAME! 프로젝트) 후기

몸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웬만한 건 완료하고 잠을 자려는데 너무 아프니 잠이 오지 않는 것과 몇 년간의 숙원 프로젝트를 완성했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기록한다. 


기록은 남는다. 

이건 결코 완성을 자축하는 글이 아니며 지난 7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록이다.



제작에 앞선 주의사항

1. 유가족분들과 팬들에게 당당히 보여드릴 수 있는 영상을 만들 것

2. 절대 신파로 내용을 이끌지 말 것(유가족 분들이 슬퍼하면 실패한 프로젝트다)

3. 기존 팬, 신규 팬, 일반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스탠스를 취할 것

4. 명맥이 끊긴 고스트스테이션의 팬 버전으로 제작할 것

5. 수익금은 유가족분들에게 돌아가게 할 것




극히 개인적인 마음의 짐

다른 사람들에겐 넥스트를 좋아한다고 말하며 한 번도 공연에 가지 못했던 게 한으로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지 않았다. 학생 때는 돈이 없어서 못 갔다 치더라도 성인이 된 이후엔 갈 수 있었음에도 가지 않았다. 언제나 곁에 있으니 미루다 그가 허망하게 가버렸다.

처음 추모 콘서트에 갔을 절망했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목소리였다. 이젠 그의 노래를 정말 들을 수 없다는 사실과 후회가 밀려왔다.

중학생 때부터 나의 이념과 사상을 흔들었던 그에게 목청 높여 고맙다고, 좋아한다고 소리 지를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없다. 


죄스러웠다. 그에게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먼 훗날 언젠가 나도 이승을 떠날 텐데 그때 그를 만나며 당당히 당신의 팬이었노라, 마왕 덕분에 내 삶이 달라졌노라 당당하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내게 형이고, 삼촌이며, 아버지였던 그를 부를 수 없을 것 같다는 사실이 그가 간 이후에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




D-4 Year 

해철이 형이 가고 홀로그램 추모 콘서트에 다녀왔다. 마음이 복잡했다.

처음엔 화가 났다. "저건 마왕이 아니야" 살아 움직이는 듯한 움직임이었지만 분명 차이는 있었다. 나와 그를 추억하는 이들을 우롱하는 것이라 분노했다.


집에 오는 길에 텅 빈 눈으로 탄 버스 뒷좌석에서 내가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그를 기억하며 적어도 몇 달은 고생하고 상부에 컴펌을 받아가며 진행했을 프로젝트였을 것이다. 아마 그 과정에서 반대의견도 있었겠지. 그런 고생 끝에 만들어진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물을 생전에 콘서트 현장 한번 다녀오지 않은 놈이 감히 평가할 일인가? 나 자신에게 화가 나 버스 뒷좌석에서 울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행동하지 않는 입만 산 머저리. 그게 나다.




D-2 Year

복면가왕에서 하현우가 마왕의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가 그를 기억하고 중요한 자리에서 그의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웠다. 마왕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었고 그는 그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시켰다. 나도 그를 기억 할 무언갈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도 실력도 없었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라는 인간은 참 변한 게 없구나...




D-2 Month

작게 하던 프로젝트가 인정을 받아 경기콘텐츠 진흥원 공익 부분에 선정되었다. 프로젝트 지원금으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동차를 타고 듣는 라디오에서 '민물장어의 꿈'이 나왔다. 불시에 나오는 마왕 노래엔 항상 감정선이 주저앉는다. 그때 '언제까지 미안해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뭔가를 해볼 수 있는 돈도, 약간의 실력도 있다. 코로나로 마왕의 추모공연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멍청하게 있으면 이번엔 정말 크게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함께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느낌을 합창으로 만들면 될 듯했다. 

이번에도 놓치면 진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비공식 팬카페에 글을 올렸다.


"해철이 형에 대한 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로요."





D-1 Month

변호사님과 저작권협회에 알아보니 저작권이 있는 음원을 사용하면 해당 저작권자에게 그 영상에 대한 수익이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다. 보통은 제작 시 피해야 할 사항이지만 '이거다!' 싶었다.

"어떻게 그에게 빚을 갚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민물장어의 꿈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 광고수익은 유가족에게 갈 것이니 나는 만들기만 하면 된다. 


준비할게 많았다. 장소, 섭외, 금액, 부족한 실력 등

냅다 판부터 벌여 놓으니 외려 꾸역꾸역 진행이 되었다. 

이번엔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D-7 DAY

최종 녹화가 끝났다. 

기획 중 일부가 틀어졌다. 

(음향) 기술적으로 할 수 없는 게 있다. 

파일 중 일부가 날아갔다.

6인분의 편집을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기획이 틀어진 건 변경하면 된다.

기술적으로 안 되는 건 돈으로 해결하자. 돈은 있다. 잘하는 전문가한테 제 값 주고 맡기자.

살아있는 파일은 최대한 쓴다.

부족한 시간은 나를 갈아 넣으면 된다. 


이번 일 제대로 못하면 나중에 그를 볼 면목이 없다. 마지막 기회다




D-5
코로나 백신을 맞고 처음 겪는 고통이 왔다. 별개의 다른 프로젝트를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낮엔 일하고 밤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7년간 아무것도 안 한 벌 같았다. 




D-DAY

모든 자료를 업로드하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전했다. 일 주간 철야의 끝.

침대에 누워서 계속 울었다. 먼 훗날 마왕을 마주했을 때 당신의 팬이었노라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 같았다. 적어도 내 남은 날에 할 후회 중의 약간은 덜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생각에 그냥 계속 울었다.


기록은 남는다. 

이건 결코 완성을 자축하는 글이 아니며 지난 7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반성의 기록이다.

그가 내게 준 모든 것에 감사하며...


https://www.youtube.com/watch?v=Q4yHXgJbK44



https://www.youtube.com/watch?v=AZC65J8kvGY&t=107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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